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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멈은 육지 가있어” 홀로 지키는 노인

“할멈은 육지 가있어” 홀로 지키는 노인

입력 2010-11-27 00:00
업데이트 2010-11-27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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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주민대책위의 결정으로 섬에 남아있던 주민 대부분이 인천으로 떠난 지난 25일 밤 8시.

 중부리 신유택(70) 할아버지의 집은 암흑으로 변한 연평도에서 다른 몇 집과 함께 외롭게 불을 밝혔다.

[사진] 연평도 포격 그 이후…남은 것은

 신 할아버지는 부엌에만 전등을 켠 채 홀로 앉아 적막한 저녁을 들고 있었다.

 취재 겸 말동무를 하려고 옆에 앉으니 할아버지는 “밥 생각도 없다”면서 이내 밥과 국 하나만 올랐던 밥상을 한쪽으로 밀어냈다.

 할아버지는 바로 몇 시간 전 섬을 떠나지 않겠다던 할머니의 등을 떼밀어 인천으로 가는 여객선에 태웠다.

 “집은 내가 지킬 테니 다른 주민들과 함께 나가서 육지 소식을 전해달라”고 할머니를 간신히 설득했다.

 할아버지는 북한의 포격이 있고부터 단 한 번도 섬을 떠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고 자란 고향인데다 자식 같은 돼지 11마리와 개 30마리를 남겨두고 발길을 뗀다는 게 맘이 놓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하루에 한 번 군부대에서 ‘짬밥’(음식 찌꺼기)을 가져다 먹이는 데 그걸 어떻게 굶기나‥”라고 말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산목숨은 마찬가지.해병대 출신인 할아버지는 살아도 함께 살고,죽어도 함께 죽는다는 생각이었다.

 할아버지라고 이번 북한의 포 공격에 놀라지 않은 건 아니다.

 당신의 할아버지 때부터 아들까지 4대째 살고 있는 고향이지만 북한군이 마을에 포를 쏜 것은 처음 겪는 일이다.

 할아버지는 “6.25사변 때도 이런 건 없었다”고 60년 전을 회상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6.25 전쟁을 겪은 할아버지는 큰아버지 배를 얻어타고 인천 월미도,덕적도로 피난길에 올랐다가 4∼5일 만에 다시 연평도로 들어왔다.

 북한과는 지척이지만 포 한 번 날아온 적이 없기에 당시 연평도는 옹진반도에서 피난 온 사람으로 바글거렸다.

 할아버지는 “그때만 해도 ‘변소’가 없어서 사람들이 해안가에 그냥 ‘뒤’를 보고 다녀 ‘똥평도’라는 소문이 났었다”라고 말하며 힘없이 웃었다.

 6.25때를 포함해 할아버지가 연평도를 잠시 떠났던 건 딱 세 차례.

 경남 진해에서 해병대 복무를 하던 20대 초반과,결혼 후 한창 젊은 나이에 돈을 벌어보겠다고 한 5년간 육지와 연평도를 오갔을 때가 전부다.

 할아버지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라는 게..떠날 수 없지.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육지로 나가는 데 못 나가고 연평에서만 사는 거지‥”라고 했다.

 고향이기 때문에,또 6.25때도 마을에 포를 쏜 적은 없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제1,2연평해전이 벌어지고 북한이 여러 차례 해안포를 쐈어도 불안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살았다.

 그러던 지난 23일,할머니와 함께 굴을 따고 돌아오는 길에 산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곳곳에서 ‘펑펑’ 소리가 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마을에 도착하니 집집마다 불이 나고 창문이 깨지고 있었다.떨리는 가슴으로 할머니와 함께 대피소로 뛰어들어갔다.

 할아버지네 건너 집이 포를 맞았지만 다행히 할아버지 집에는 큰 피해가 없었다.

 전기는 안 들어왔지만,할머니와 둘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추운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마을을 떠났다.

 할아버지는 “동네가 어수선하고 사람들도 없으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동네 전부가 빈 상태 아니냐”며 허탈한 심경을 드러냈다.

 “나이 먹어서 무슨 외로움을 느끼겠느냐”고 애써 담담해하던 할아버지는 “그래도 매일 보고 전화통화했던 5살짜리 손자가 제일 보고싶다”며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깊어가는 연평도의 밤,잠이 오지 않는다는 할아버지는 지난 23일 할머니와 함께 따 온 굴을 손질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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