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여자는 길치? 편견이죠” 길찾기 ‘달인’ 여경

“여자는 길치? 편견이죠” 길찾기 ‘달인’ 여경

입력 2011-04-22 00:00
업데이트 2011-04-22 08:02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경찰 지도그리기 대회 1위…역 인근 지도 5분만에 그려

”은행 위치는 꼭 알아둬야 합니다. 날치기나 강도 사건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주유소나 LPG 충전소 위치도 중요해요.”

21일 오후 서울 강북경찰서 회의실에서 만난 전희경(42.여) 경위는 관내의 최대 번화가인 4호선 수유역 인근을 지도로 그려달라는 기자의 요구에 A4 용지를 꺼내더니 볼펜으로 5분 만에 슥삭 지도를 완성했다.

겉보기엔 단출했지만 지령실에서 함께 근무하는 남자 경찰관들의 것과 비교해보니 확연히 차이가 났다.

초행인 사람도 큼직한 사각형에 옛 건물명까지 적힌 이 지도를 갖고 금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112지령실에서 근무한지 만 2개월째인 전 경위는 지난 7일 서울지방경찰청이 실시한 ‘길학습 경연대회’ 112지령실 부문에서 남자 직원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학창시절 온갖 지도가 실려있는 사회과부도 교과서를 즐겨 봤다는 그는 경찰에서 10여년 근무하는 동안 교통안전계, 정보계 등 지리적 감각이 필요한 부서만 거치다 보니 자연스레 실력이 늘었다며 겸손해했다.

방향감각이 좋은 남자들보다 더욱 실력을 쌓게 된 ‘비법’이 뭐냐고 묻자 “여자보고 길눈이 어둡다고 하는 건 남자들보다 거리를 많이 돌아다니지 않아서 생긴 편견 아닐까요?”라고 되물었다.

대회를 앞두고 지도그리기 연습도 했지만, 실은 2년 전부터 틈날 때마다 자전거로 관내를 돌아다닌 게 밑거름이 됐다.

또 평소 출퇴근을 하거나 돌아다니면서 주변 상가의 간판을 눈여겨보고 ‘마트가 식당으로 바뀌었다’ ‘새로 생긴 가게’ 하는 식으로 머릿속에 입력하기도 했단다.

그는 “다른 지령실 직원들도 다 노력을 하지만, 나는 여자라서 일 못한다는 소리 듣기가 싫어서 더 열심히했다”며 이제는 수시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지도를 찾아보며 재미를 느낄 정도가 됐다고 했다.

전 경위 같은 일선 경찰서의 지령실 근무자는 112신고를 받고 지구대 직원들에 출동 명령을 내리면서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순찰차 내비게이션에 의존하는 경우도 있지만, 경찰서 관할 구석구석의 특성까지 파악하고 있는 지령실 근무자가 무전으로 실시간 설명해주는게 더 빠를 때가 많다고 한다.

차를 몰 도 방향감각만으로 길을 찾는다며 “노래방 기계가 나온 이후 사람들이 가사를 잘 못외우는 것처럼 내비게이션 때문에 길찾는 능력이 퇴화된 것 같아요. 기계가 편리한 점도 있지만 일단 머릿속에 지도가 입력되면 훨씬 출력이 빠릅니다”고 말했다.

전 경위는 “한번은 아들이 납치당했다는 신고자가 당황해서 위치 설명을 제대로 못한 적이 있었는데, 재빨리 장소를 파악하고 순찰차에 빠르게 안내를 한 덕에 결국 ‘보이스피싱’인 것을 알아내고 범죄를 막았다”며 뿌듯해했다.

경찰 부부인 그는 남편보다 자기가 지도를 더 잘본다며 크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등학교 3학년인 딸애가 경찰이 되고싶다고 해 가끔 지도를 함께 보며 공부하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연합뉴스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선택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현재의 보험료율(9%), 소득대체율(40%)을 개선하는 2가지 안을 냈는데요. 당신의 생각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로 각각 인상(소득보장안)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40%로 유지(재정안정안)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