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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수발 힘들까봐…” 어버이날 60대 노부부 동반자살

“병수발 힘들까봐…” 어버이날 60대 노부부 동반자살

입력 2011-05-10 00:00
업데이트 2011-05-1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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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병을 앓던 60대 부부가 어버이날에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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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경기 용인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8일 오후 5시 30분쯤 경기 용인시 신봉동의 한 아파트에서 전모(69)씨와 부인 노모(62)씨가 숨져 있는 것을 경비원이 발견했다.

남편 전씨는 침실에서 누워 숨진 채 발견됐는데, 목에는 졸린 흔적이 남아 있었고 부인 노씨는 베란다에서 목을 맨 채 질식사했다.

목격자 경비원은 “함께 살고 있는 큰아들로부터 ‘집에 계신 부모님들이 전화를 받지 않고 있으니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확인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집안에 들어가 보니 두 사람이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전씨 부부는 함께 사는 아들 부부에게 “그동안 우리를 돌보느라 고생이 많았다.”는 말과 함께 지난 7일 제주도로 3박 4일 동안 여행을 권한 뒤 둘이서 집을 지키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

회사원인 큰아들(40), 맞벌이하는 며느리(38),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 2명과 함께 노년의 삶을 살던 이들에게 불행은 젊은시절부터 암울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전씨는 서울의 명문 고교와 명문대 법대 출신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다. 그러나 그 무렵부터 극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하나둘씩 법조인이 돼 활동하는 학교 친구들과 달리 법조인의 길을 걷지 못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어려웠다. 못난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한 전씨의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졌고, 급기야 지난해부터는 중증 노인성 치매까지 앓았다.

이 때문에 큰아들 내외와 손자들이 직장과 학교에 가 있는 동안 거동이 불편해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간호는 함께 늙어 가는 부인 노씨의 몫이었다. 노씨는 꿈도 많았겠지만 특별히 싫은 내색도 하지 않고 반평생 남편의 병수발을 도맡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힘겹게 남편을 간호하던 노씨도 세월의 무게는 견디지 못했다. 암세포가 몸으로 스며든 노씨는 7개월 전 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에도 노씨는 통원 치료를 받아야 했고 우울 증세까지 보여 점점 남편의 병수발을 하기 힘들 만큼 건강이 악화됐다.

결국 노씨는 함께 살던 아들 식구들을 모두 여행 보내고, 비극적인 종말을 선택하고 말았다. 이들 부부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 형제들에게 유서 5장을 남겼다.

아들에게는 ‘고맙다. 미안하다. 아버지와 엄마가 함께 죽어야지 어느 하나만 죽으면 너희에게 짐이 될 것이다.’, 며느리에게는 ‘고맙고 미안하다. 아이들 잘 키워라.’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손자들에게는 ‘엄마, 아빠와 행복해라. 그리고 사랑한다.’, 형제들에게는 ‘우리 큰아들 내외가 많은 고생을 했는데 잘 도와줘라.’라는 글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전씨의 큰아들은 경찰에서 “여행을 안 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괜히 가서…”라고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찰은 유족들의 진술과 유서 내용을 토대로 부인 노씨가 남편 전씨의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자신도 자살한 것으로 추정했다.

장충식기자·연합뉴스 jjang@seoul.co.kr
2011-05-1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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