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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흔, 사건의 발자국 한 방울로 범인 찾다

혈흔, 사건의 발자국 한 방울로 범인 찾다

입력 2012-12-31 00:00
업데이트 2012-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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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흔형태 전문가 국과수 서영일 연구사

노름판에서 살인사건이 났다. 최초 신고자 이모씨는 “노름판에 끼려고 친구 집을 찾았는데 친구는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중상을 입고 의식불명 상태였다.”고 말했다. 사건 다음날, 이씨의 집 세탁기에서 피 묻은 옷이 나왔다. 그러자 이씨는 말을 바꿔 “어제 두 친구가 노름을 하다 심하게 싸워 말리는 과정에서 피가 묻었다.”고 둘러댔다. 석연치 않았다. 이씨의 점퍼와 바지에도 작은 타원형 모양의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흉기를 휘두르는 순간 사망자의 상처에서 튄 혈흔이 분명했다. 이씨는 지난달 7일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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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혈흔 형태 전문가 서영일 연구사. 이언탁 기자 utl@seoul.co.kr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혈흔 형태 전문가 서영일 연구사.
이언탁 기자 utl@seoul.co.kr
범죄 현장에 떨어진 핏자국은 살인 등 유혈범죄 수사에 결정적 증거가 되는 경우가 많다. 혈흔의 모양, 크기, 방향에는 범행도구, 용의자의 움직임 등 다양한 정보가 들어 있다. 핏자국을 재구성해 범죄 현장을 역추적하는 사람. 30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유일의 혈흔 형태 전문가 서영일(38) 연구사를 만났다.

“공판 중심주의 사법제도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혈흔의 형태는 기소된 내용의 설득력을 높이고 용의자 진술의 진위를 가려내는 결정적 단서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추세이지요.”

실제로 국과수는 혈흔 분석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최근 본원 물리분석과에 혈흔 형태 업무를 추가한 데 이어 혈흔 실험실의 설치도 구상하고 있다. 군대 내 총기 사고가 나면 군 수사기관과 공동으로 분석 작업에도 나선다. 그 중심에 서 연구사가 있다.

“국과수는 첨단 지식과 기술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이 결과를 경찰 과학수사대에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좌표를 입력해 혈흔의 포물선 운동까지 계산할 수 있는 혈흔 형태 분석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데 결과가 잘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2005년 대구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를 중심으로 본격 도입된 혈흔형태 분석은 2009년 서 연구사의 참여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일단 피해자가 가격당해 튀는 혈액 방울(비산 혈흔)은 범행 현장에서 직접적인 공격 행위가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피는 중력과 공기 저항의 영향을 받아 포물선 운동을 하는데 물리학적 지식과 수학적 계산을 통해 범행 도구로 칼을 사용했는지 망치와 같은 둔기를 사용했는지 추정할 수 있는 것이죠. 옷이나 신발에 묻은 피를 분석해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혈액 방울의 운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보니 복잡한 유혈 사건일수록 물리학, 수학 등 깊은 지식이 필요하다. 서 연구사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에는 과학 철학을 독학하며 과학의 힘으로 진실을 밝히는 일을 꿈꿔 왔다. 내년에는 국내 최초로 혈흔형태로 박사 학위도 받을 예정이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수사 선진국에서는 이미 혈흔 형태 분석을 수사 과정의 필수 과정으로 두고 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 ‘도망자’의 실제 사건인 1954년 미국의 의사 부인 사망 사건의 판결을 뒤집은 것도 혈흔 형태 분석이었죠. 이제 한국도 혈흔 형태에 대한 법과학의 뒷받침이 필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2012-12-3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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