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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위안부 피해 최선순 할머니 쓸쓸한 ‘영면’

日 위안부 피해 최선순 할머니 쓸쓸한 ‘영면’

입력 2013-08-26 00:00
업데이트 2013-08-26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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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위안부 피해 최선순 할머니 영면
日 위안부 피해 최선순 할머니 영면 日 위안부 피해 최선순 할머니 영면 (고창=연합뉴스) 지난 24일 향년 87세의 나이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최선순 할머니가 영면했다. 사진은 최 할머니의 생전 모습.
“16살 때 아버지 약 사러 나갔다가 일본군한테 잡혀갔지. (위안부 시절) 너무 고통스러워서 실성을 했어. 일본군들이 나가면 뒤에다 대고 ‘빵, 빵’ 소리를 질렀어.”

지난 24일 향년 87세의 나이로 끝내 일본 정부의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하고 영면한 고(故) 최선순 할머니는 위안부로 일본군에 징집되던 당시 상황을 생전에 생생히 기억했다.

최 할머니는 1927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두 언니가 시집을 간 뒤 대여섯 살 무렵부터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집안 살림을 보살폈다.

그러던 중 16세가 될 무렵 동네에는 일제가 ‘위안부’를 강제 징집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아버지 약을 사러 집을 나섰던 할머니는 16살 꽃다운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최 할머니는 “일본군들이 공장에서 수출하려면 큰아기들(처녀)이 필요하다고 집집이 영장을 보냈다”면서 “일본에 가야지 안 그러면 부모까지 다친다고 협박을 했다. 내가 안 잡혀 갈라고 숨어 댕겼는데 아버지께서 아파서 장에 약을 사러 가다가 붙잡혔다”고 세상을 떠나기 전 당시 상황에 대해 녹음 기록을 남겼다.

그렇게 일본행에 오른 최 할머니는 배에서 수 없는 구타와 폭력을 당했다.

최 할머니는 ‘이름을 더럽힐 수 없다’는 생각에 이름을 대라는 일본군에게 ‘김봉이’라고 거짓 이름을 댔다.

그 뒤로 3년간 할머니는 일본에 있는 군부대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다. 최 할머니는 당시 기억이 거의 희미하다고 생전에 밝혔다. 다만 ‘실성을 했었던 것 같다’는 진술만을 남겼다.

해방이 되고 최 할머니는 귀국해 전남 광주에 터를 잡았다. 당시 나이 19살이었다.

일본에서 일본군이 준 아편에 중독됐던 할머니는 귀국 몇년 뒤 힘겹게 아편을 끊고 고인이 된 남편 왕모씨를 만나 결혼했다.

남편 역시 일본에 징집돼 생활했던 전쟁 피해자였다. 할머니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지만 할머니가 44세가 되던 해 남편은 자식 셋을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최 할머니는 “남편이 내가 그렇다(위안부)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애들 한번 때린 적도 없고 나한테도 자상하게 잘해줬다”면서 생전에 자주 행복했던 결혼생활을 회고했다.

그 뒤 1993년 할머니 나이 67세가 되던 해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에서 사람이 찾아와 그동안 미뤄왔던 ‘위안부 등록’을 했다.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았지만 생계보조금이 매달 나와 형편은 조금 나아졌다.

그는 생전에 “마음이 아픈 것은 한국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는 것이다”고 위안부 등록 이후 괴로웠던 심정을 자주 토로했다..

이후 최 할머니는 고향인 고창에서 홀로 조용히 살다가 이날 끝내 한많은 생을 마감했다.

일본군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은지 70년이 지났지만 일본 정부의 사과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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