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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 혐의 강제출국’ 예멘인 한국상대 소송

’테러리스트 혐의 강제출국’ 예멘인 한국상대 소송

입력 2014-02-10 00:00
업데이트 2014-02-1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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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재판서 피고 제출명령 서류 안 내도 입증 책임은 원고에”

매서운 고추바람이 귀를 에던 지난해 2월 중순. 3년째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를 오가며 중고차 무역업을 하던 예멘인 A(36)씨는 한국 내 체류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았다. 계획했던 승용차를 모두 사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연장 신청서를 작성해 출입국사무소 직원에게 건넸고, 잠시 뒤 ‘5층으로 가서 기다리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8차례나 한국에 입국했고 수차례 연장 허가도 받아봤지만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1시간 뒤 다른 직원이 다가와 연장 허가서 대신 수의를 건넸고, 얼음같이 차가운 수갑도 손에 채웠다. 멍하니 선 A씨의 귀에는 “당신은 위험한 인물이니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직원의 말만 맴돌았다.

엿새 동안 출입국사무소에 감금된 그는 같은 해 20일 고국인 예멘으로 강제 출국 조치됐다. ‘다시는 한국에 올 수 없다’는 출입국사무소 직원의 마지막 말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영문도 모른 채 한국에서 쫓겨난 A씨는 예멘 주재 한국 대사관을 찾아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강제 출국 이유를 따져 물었다.

며칠을 기다려도 답변이 없자 예멘 외교부에 도움을 청했고 잠시 뒤 “테러리스트 혐의로 체포·억류되었다가 추방됐다. 2013년 3월 4일 자로 입국 금지가 해제됐다”는 확인서를 예멘 주재 한국 영사로부터 받았다.

A씨는 ‘6일간 아무런 조사도 없이 구금한 것은 재량권 남용이나 과잉금지에 해당하고 강제 출국 조치도 부당하다’며 한국을 상대로 5천103만6천800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A씨의 변호인도 재판 과정에서 “국가정보원 등 한국 정부가 정당한 근거 없이 A씨를 테러리스트로 오인했다”며 “테러리스트임을 전제로 이뤄진 불법구금과 강제출국 조치 등은 모두 위법하다”고 피고 측의 책임을 주장했다.

그는 또 “A씨를 강제출국시킨 국정원이 법원의 관련 문서제출 명령에도 아무런 자료를 재판부에 내지 않았다”며 “이는 피고가 명확한 근거없이 임의로 원고를 입국규제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국정원 측은 A씨의 고국인 예멘이 국제테러조직인 알 카에다가 활동하는 국가이고 A씨가 싱가포르 등에서 입국 규제된 바 있다고 주장했다. 또 A씨가 싱가포르에서 체포된 테러리스트 B씨와 친분이 있다며 맞섰다.

인천지법 민사4단독 이효진 판사는 10일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가 정당한 근거 없이 원고를 테러리스트로 오인했다고 보기 어렵고 보호조치(감금)나 강제퇴거 명령(강제출국 명령)이 위법하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 판사는 또 “피고가 문서제출 명령에 따르지 않아도 법원은 그 문서에 의해 입증하고자 하는 원고 측의 주장까지 증명됐다고 보지 않는다”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인천지법 이의영 공보판사는 “민사재판은 형사재판과 달리 소를 제기하는 원고 측에 모든 입증 책임이 있다”며 “법원이 제출 명령한 서류를 피고 측이 내지 않은 사실 자체만으로 원고 측의 주장이 입증됐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본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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