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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 결정난 ‘미네르바법’ 명예훼손죄로 부활하나

위헌 결정난 ‘미네르바법’ 명예훼손죄로 부활하나

입력 2014-09-25 00:00
업데이트 2014-09-2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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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까지 실시간 감시’ 불안감에 외국산 메신저 유행

검찰이 인터넷상 허위사실 유포 행위에 강경대응 방침을 밝힌 뒤 SNS 등 사적 영역까지 감시당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네르바’ 사건 이후 위헌 결정으로 사라진 허위사실유포죄를 인터넷 명예훼손죄로 되살려 정부를 향한 비판을 위축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카톡이 감시당할 수도 있다’는 소문에 외국에 서버를 둔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옮기는 ‘사이버 망명’이 유행이다.

검찰은 “악의적 허위사실 때문에 피해가 크거나 사회적으로 논란이 우려되는 사안에 대해서만 수사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카톡 무작정 안 본다” 검찰 해명 = 검찰은 지난 18일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대응방안’이라며 서울중앙지검에 전담수사팀을 꾸렸다. 인터넷을 실시간 모니터링해 허위사실 유포 사범을 상시 적발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런 방침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고 말한 지 이틀 만에 나왔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검찰이 호들갑을 떠는 모양새다.

더 큰 논란은 ‘실시간 모니터링’ 방침에서 불거졌다. 시민 대부분은 포털사이트 등 공개된 온라인 공간뿐만 아니라 카카오톡 등 사적 대화까지 들여다보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꺼림칙함을 참지 못한 시민들은 러시아에서 제작된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 등으로 갈아타고 있다. 텔레그램의 다운로드 횟수가 카카오톡을 앞지르고 제작사가 프로그램 한글화를 추진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현행법상 범죄혐의가 없는 개인의 메신저 대화를 수사기관이 실시간 모니터링 차원에서 들여다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최근 스마트폰에 텔레그램을 깐 만화가 김태권(40)씨는 “실제로 처벌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괜히 겁주는 행위 자체가 삼권분립의 의미를 훼손하는 왕조시대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검찰은 서둘러 해명에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25일 “수사대상은 포털사이트 등 공개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허위사실 유포행위”라며 “메신저와 SNS 등 사적 공간에서 이뤄진 대화를 검색하거나 수사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포털 사이트 등 모니터링에 대해서도 “악의적인 허위사실이 유포돼 피해가 발생했는데도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아 추적이 필요한 사건을 주로 수사할 방침이다.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우려가 있는 경우는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외국선 사라진 명예훼손죄 되레 확대 적용” = 법조계에서는 인터넷 허위사실을 적극 찾아내 명예훼손죄로 처벌하겠다는 검찰 방침이 2010년 위헌결정으로 사라진 이른바 ‘미네르바법’을 사실상 부활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미네르바법은 ‘공익을 해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를 이용해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옛 전기통신법 47조1항이다. 인터넷 논객 박대성(36)씨는 온라인에서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하다가 이 조항에 걸려 기소됐으나 헌법소원을 낸 끝에 위헌 결정을 받았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공익’의 의미가 불명확하고 추상적이어서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명확성 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위헌 결정 이후 인터넷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처벌 근거가 모호해졌다. 검찰은 ‘공익’을 문제삼는 대신 허위사실에 언급된 당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죄를 적용하는 쪽으로 논리를 바꿨다.

그러자 정책 비판의 피해자를 누구로 볼 건지가 관건이 됐다.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국가정보원은 2009년 민간사찰 의혹을 제기한 박원순 서울시장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지만 비슷한 취지로 패소했다.

이 때문에 검찰은 기관 구성원 개인을 명예훼손의 피해자로 놓고 허위사실 유포 사범을 처벌하고 있다. 세월호 관련 허위사실을 퍼뜨린 혐의로 지난 5월 기소한 김모(30)씨가 대표적 사례다.

검찰은 ‘현장 책임자가 구조와 시신 수습을 막고 있다’는 내용의 카카오톡 대화를 꾸민 김씨가 해양경찰을 비롯한 구조작업 담당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봤다. 김씨는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명예훼손죄를 폭넓고 적극적으로 적용해 건전한 비판까지 위축시킨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명예훼손 형사처벌 제도는 유엔인권위원회가 폐지를 권고했고 상당수 선진국이 폐지하거나 사문화한 상태다. 권력이 검찰을 동원해 비판을 입막음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박주민 변호사는 “사상의 자유시장에 가까운 인터넷 공간에 검찰이 개입하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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