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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고 입 닫은’ 인권위 현실 여실히 드러낸 정보노트

‘눈 감고 입 닫은’ 인권위 현실 여실히 드러낸 정보노트

입력 2015-03-01 10:34
업데이트 2015-03-0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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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원 선출방식 한계…ICC 등급심사에 부정적 영향 우려

국가인권위원회가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UNHRC)에 보낼 정보노트(기초자료)에서 국내 주요 인권 쟁점을 다수 삭제한 것은 ‘눈 감고 입 닫은’ 인권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권위는 현병철 위원장 취임 후 지난 6년간 기능과 역할이 크게 후퇴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번 일을 통해 이 같은 인권위의 한계가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유엔이 정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인 자유권규약은 시민의 자결권과 평등권, 신체의 자유와 안전,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의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비준국이 해당 규약을 이행하는 정도는 그 나라의 인권 상황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된다.

우리나라는 1990년 자유권규약을 비준한 이후 지금까지 UNHRC로부터 세 차례 심의를 받았다.

가장 최근인 3차 심의는 2006년 진행된 바 있으며, 오는 10월 1일부터 11월 6일까지 열리는 위원회 113차 실무그룹회의에서 4차 심의가 이뤄진다.

’보수정권 10년’ 하에서의 한국 인권상황과 현병철 위원장 체제 인권위가 한 역할이 평가대에 오르는 것이다.

UNHRC는 가입국 정부와 그 나라 비정부기구(NGO)로부터 각각 받는 참고자료와 여러 의견을 참조해 쟁점 목록을 작성하고 심의를 거쳐 ‘최종 견해’ 형식으로 정부에 권고사항을 보낸다.

한국 인권위처럼 독립적 국가인권기구가 있는 경우에는 그곳에서 별도로 자료를 받는데, 이 자료는 양극단에 있는 정부나 NGO와 달리 객관적·중립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여겨져 심의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권위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거나 명백한 침해 사례가 있었던 인권 쟁점을 정보노트에 넣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내용도 제외했다.

삭제된 항목인 성소수자나 이주민 인권, 언론기관의 독립성, 집회·시위 현장에서의 공권력의 무리한 채증 등은 모두 그동안 인권위가 침묵했던 사안들이다.

이렇게 작성된 인권위 정보노트가 최종안 그대로 의결돼 위원회에 전달되면 NGO들이 제기한 인권 문제들이 UNHRC 심의 과정에서 등한시될 우려가 있다.

인권위가 밝힌 것으로 알려진 삭제 근거는 ‘의견표명을 한 적이 없어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라거나 ‘다른 나라 보고서와 비교할 때 분량이 지나치게 많아 항목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인권 전문가들은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이전에 인권위가 다루지 않았다고 해서 정보노트에 담을 수 없다는 것은 근거 없는 주장이며, 분량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것도 국가별로 일률적인 잣대를 댈 수 없기에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또 “국가인권기구는 정보노트 초안을 가지고 시민사회와의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거쳐 내용을 확정하게 돼 있다”면서 “그러나 인권위가 인권단체와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이런 절차가 제대로 진행됐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중립성과 독립성을 잃을 수밖에 없는 인권위원 선출 방식에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인권위원은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이 선출하기에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어렵고 공권력의 인권침해 사건에서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보노트 작성 과정에서도 일부 보수성향 위원들이 적극적으로 특정 항목들을 삭제하라고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장을 포함해 상임·비상임 인권위원 11명 중 6명이 법조인 출신인 편향적 내부 구성도 수사기관이 관계된 인권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낳았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부실한 정보노트가 이달 진행되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등급심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세계 120여개 국가의 인권기구 연합체인 ICC는 5년마다 각국 인권기구의 활동이 ‘국가인권기구 지위에 관한 원칙’(파리원칙)에 맞는지를 판단해 등급을 매긴다.

인권위는 2004년 가입 당시 A등급을 받았으나 지난해 3월과 11월 ICC 승인소위원회 심사에서 A등급을 인정받지 못하고 두 차례나 ‘등급 보류’라는 수모를 당했다.

ICC는 당시 “인권위원 임명 절차의 투명성이 충분히 보장돼 있지 않고 국내 시민사회의 참여도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인권위의 한 관계자는 1일 “ICC가 요구하는 것은 시민사회와 소통하며 국내 인권상황에 걸맞게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자격 있는 인권위원을 선출하도록 절차를 마련하라는 것”이라며 “인권위가 이런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스스로 점수를 깎아내리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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