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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로 드러난 한국 의료체계의 민낯

메르스 사태로 드러난 한국 의료체계의 민낯

입력 2015-06-13 09:52
업데이트 2015-06-1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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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 수(126명) 세계 2위, 사망자 수(11명) 3위.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시스템을 갖췄다고 자평해온 한국에서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벌어진 메르스 전파의 충격적인 결과다.

국내에서 환자 수가 급증하자 일각에서는 ‘메르스’(MERS) 대신 ‘한국 호흡기증후군’을 의미하는 ‘코르스’(KORS)로 바꿔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한국의 메르스 전파 과정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국내 최고 병원 중 하나로 꼽히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이 최대의 진원지가 됐다는 것이다.

이는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이 극심한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으로 외신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여기에 민간병원 중심의 의료체계와 부실한 공공의료, 가족과 보호자가 환자를 돌보는 한국적 간병, 문병 문화도 ‘제2의 메르스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감염병 시한폭탄’ 미어터지는 대형병원 응급실

12일까지 발생한 메르스 확진자 126명 중 절반에 육박하는 60명이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감염됐다.

이는 메르스 1차 유행의 진원지인 평택성모병원에서 나온 환자(37명)보다도 많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이 한국 메르스 감염지도에서 최대 ‘진앙’인 셈이다.

평택성모병원에서 감염된 14번 환자 1명이 옮겨갔을 뿐인 삼성서울병원에서 대규모 병원내 감염(super-spread)이 일어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우선적으로 의료전달체계 붕괴에 따른 대형병원으로의 극심한 환자 쏠림을 꼽는다.

일반 병의원에서 불편을 겪고 의사의 진단에 의심이 들거나 상태가 위중해진 환자들은 무작정 대형병원을 찾는다. 이 때문에 대형병원은 항상 입원병실이 부족하고, 응급실에서 입원 대기 상태로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부가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상급병원 진료의 환자 본인부담을 늘리는 등 조치를 취했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대형병원 응급실은 이용자가 계속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집계한 빅5 병원의 응급의료관리료 청구건수는 2011년 16만1천131건에서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에는 30만9천355건으로 30만건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전체 응급의료관리료 청구건수(503만7천363건)의 6.1%를 빅5 병원에서 청구했다.

이 때문에 우리 대형병원 응급실은 이번 메르스처럼 예고 없이 찾아오는 감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 부실한 공공의료 인프라도 한 몫

정부가 민간의료 중심으로 의료산업정책을 펴면서 부실해진 공공의료 시스템도 메르스 사태 확산에 한몫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기준 한국의 인구 1천명당 공공병상 수는 1.19개로 24개 회원국 평균의(3.25개)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메르스 감염이 의심되는 격리대상 환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정부가 위급한 시기에 통제할 수 있는 공공병원이 많지 않고, 그나마 국공립병원에는 격리병동으로 활용할 1인실도 크게 부족하다.

보건당국은 각종 감염병 치료를 위해 전국 17개 병원에 음압병상(바이러스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설계된 병실) 105개를 입원치료격리병상으로 확보하고 있지만, 각각 따로 격리치료해야 하는 환자를 얼마나 수용할지 의문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의 주요 원인이 된 병원내 2차·3차 감염이나, 환자를 치료하던 의료진의 감염도 이런 시설 및 장비 부족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전국의료산업노조는 “국내 병원에는 감염병 방지 시설이 부족하고 예방 장비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며 “민간의료기관이 활용도가 떨어지는 격리 병상 등에 투자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공공의료 시설도 부족해 메르스처럼 전염성이 높은 질병에 대한 대응과 의료진 보호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메르스 확산 상황에서 현장을 지켜야 할 감염병 전문인력도 태부족이다.

김성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에 따르면 국내 역학조사관이 34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들도 조사 전문 인력이 아니라 대부분이 공중보건의다.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메르스에 대한 정확한 현장 조사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전병율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30여명의 역학조사관으로는 이번 메르스 사태에 대응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전문 조사인력을 대폭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정부는 초기대응에 실패한 이후에도 한동안 민간의료기관에 협조를 구하지 못한 채 눈치만 보다가 제때 대응을 못했고, 이번 사태로 피해를 본 민간의료기관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계획도 내놓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았다.

◇ 한국적 간병 문병 문화도 도마에

가족들끼리 돌아가며 환자를 돌보거나 무리해서라도 문병을 하는 우리의 간병 및 문병 문화도 감염자를 늘린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11일까지 확인된 126명의 확진자 중 간병을 위해 함께 있던 가족이나 보호자, 문병객이 21명에 달한다. 전체 확진자의 17%에 육박한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의학과장을 지낸 송형곤 이천병원 응급의료센터장은 “국민 정서상 아는 분이 입원하면 과할 정도로 많이 병문안을 온다”며 “아프고 힘들 때 찾아가야 위로가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번 사태에서는 굉장히 안 좋은 요소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송 센터장은 이어 “응급실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보호자에게 출입증을 1개씩 나눠주긴 하는데 실효성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환자 가족이나 문병객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간호사가 간호를 전담하는 ‘포괄간호제’ 등이 정착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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