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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 건 우리 아인데, 왜 쫓기듯 도망가야 하나요

맞은 건 우리 아인데, 왜 쫓기듯 도망가야 하나요

윤수경 기자
윤수경 기자
입력 2015-07-12 23:40
업데이트 2015-07-13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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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과 싸운 강남 초등생 지용이와 엄마의 ‘1년간의 악몽’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평범한 학부모 박혜순(46·여·가명)씨. 아들 지용(13·가명)군이 지난해 6월과 7월 잇달아 동급생에게 학교폭력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된 후 모자의 삶에는 지울 수 없는 깊은 생채기가 남았다.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학교폭력은 1년이 지난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기자와 5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한 박씨가 겪은 지난 1년을 12일 그의 목소리로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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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잔 다르크가 아니다. 대치동의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 학원에나 관심을 쏟는 수준이었다. 지난 1년간 아들 지용이에게 닥친 학교폭력 문제와 싸우면서 나는 그야말로 ‘문제적 엄마’가 됐다. 지용이가 다니던 A초등학교에서 나는 “돈 때문에 아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이상한 엄마”가 됐다. 교장 선생님은 내게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쾌활했던 지용이의 얼굴이 플라스틱 마네킹처럼 딱딱하게 굳어진 건 1년 전 이맘때였다. 지용이는 6학년이던 지난해 6월과 7월에 각각 친구 B군과 C군으로부터 화장실 폭행을 당했다. 두 차례의 폭행 사건 이후 지용이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그래도 억지로 아이를 학교에 밀어 넣은 것은 학교가 아이를 도와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처참히 깨졌다. 아이에게 담임교사가 찍은 동영상 이야기를 듣는 순간 까무러칠 뻔했다. 지용이와 가해 학생들을 교실에서 떨어져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담임교사는 지용이와 가해 학생이 교실에서 서로 악수하고 껴안는 모습을 억지로 연출해 화해 동영상을 찍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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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 장면을 목격한 아이의 진술도 있었지만 일방적으로 화해하는 것으로 처리됐다. 목격한 아이의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사건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며 정색을 표했다. A초등학교 일부 학부모가 찾아와 “더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 달라”고 내게 신신당부하고 간 일도 있었다.

지용이는 아프기 시작했다. 아이는 “불이 났는데 엄마는 왜 나를 안 구해 줬느냐”고 소리치고, “베란다 블라인드 좀 내려 달라. 창문 밖에서 수많은 눈이 째려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용이는 병원에서 급성 스트레스 장애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

가해 학생들과 분리시켜 달라고 꾸준히 요청했다. 하지만 A초등학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간 진술이 엇갈린다는 이유로 ‘서면 사과’ 조치로 매듭지었다. 재심 청구와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청구 모두 기각했다. 가해 학생은 가만히 둔 채 지용이만 지난해 8월 인근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전학 간 후 지용이는 “이제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가 막힌 일은 또 일어났다. 지난 3월 지용이는 마주치기도 두려워했던 가해 학생 C군과 같은 중학교에 배정됐다. 학교폭력 1년이 지난 지금도 가해 학생 부모와 민사소송을 이어 가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깨달은 건 학교도, 교사도, 교육청도 우리 아이를 구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2015-07-13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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