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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강도→기업사냥→원정도박…21세기 조폭 생존법

납치강도→기업사냥→원정도박…21세기 조폭 생존법

입력 2015-10-25 11:35
업데이트 2015-10-2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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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촌 양아들’ 1990년대 주먹세계 입문…사업가 변신2013년 돈줄 찾아 마카오 카지노에 3억 투자 지분 확보

동남아 원정도박 사건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김모(42)씨는 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 이후 척박해진 환경에 폭력조직이 어떻게 적응하며 변신했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2013년 1월 사망한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의 양아들로 알려진 인물이다.

김씨가 언제 범서방파에 발을 들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경찰이 관리하는 조직원 명단에도 없다. 그러나 젊은 시절부터 범서방파 조직원들과 함께 움직이며 행동대원 노릇을 시작한 것으로 검경은 파악하고 있다.

25일 검찰과 법원에 따르면 김씨는 20대 중반에 이미 선배 조폭과 함께 납치강도 행각을 벌인 경력이 있다. ‘광주 동아파’ 소속 이모씨는 1997년 고향 선배인 사업가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해 김씨를 끌어들였다. 당시 24세였다.

처음에는 김씨를 ‘대포차 구입 전문’으로 내세워 “1억2천만원짜리 신형 벤츠승용차를 싸게 마련해주겠다”며 8천만원을 받아챙겼다. 김씨는 1999년 4월 이씨가 고향 선배를 납치해 2억6천만원을 뜯어내는 데도 가담했다. 전형적인 ‘갈취형 조폭’이었다. 이 범행으로 김씨는 징역 4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10여년이 지난 2011년 김씨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2000년대 들어 ‘3세대 조폭’의 새 사업영역으로 떠오른 ‘기업사냥’에 발을 들인 것이다.

김씨는 기업 인수합병(M&A) 전문 브로커를 끌어들여 위조지폐감별기 제조업체 S사를 262억원에 인수했다. 2013년 1월11일 주주총회에서 경영권을 얻은 지 나흘 만에 회삿돈 209억원을 빼돌려 사채업자에게 빌린 인수대금을 갚는 데 썼다. S사는 결국 같은해 7월28일 상장폐지됐다.

김씨는 기업인 행세를 하면서도 범서방파의 명맥을 잇기 위해 1년 가까이 의식없는 상태로 투병생활을 하던 김태촌의 수발을 들었다. 김태촌이 숨졌을 때는 부고장을 직접 돌린 것으로 전해진다.

김씨는 S사에서 손을 턴 뒤 2013년 5월 사업무대를 동남아 카지노로 넓혔다.

범서방파 계열 ‘광주송정리파’ 행동대원 이모(39)씨가 2년 전 마카오로 건너가 기반을 다져놓은 터였다. 정운호(50·구속기소)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이미 이씨의 단골이었다.

카지노 VIP룸을 빌려 한국인 원정도박꾼을 유치해 판돈의 1.24%를 챙기던 이씨는 김씨의 합류를 계기로 판을 키웠다. 판돈의 일부인 ‘롤링수익’ 뿐만 아니라 도박꾼이 잃은 금액, 이른바 ‘루징금액’의 40%를 챙기는 ‘쉐어정킷’ 형태로 영업방식을 바꿨다.

김씨는 이런 형태의 카지노룸인 일명 ‘경성방’을 설립하는 데 3억원을 투자하고 지분을 얻었다. 마카오를 찾은 도박꾼들에게 한화를 홍콩달러로 바꿔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불법 외환거래로 부수입을 올렸다.

검찰이 조폭수사의 패러다임을 갈취·폭력범죄에서 합법을 가장한 금융·기업범죄로 바꾼 지는 오래다. 동남아 카지노에 국내 조폭이 대거 진출하며 자금원을 확보한 사실은 김씨의 S사 자금 횡령이 발각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검찰은 올해 3월24일 김씨를 횡령 혐의로 체포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원정도박 수사의 단서를 찾았다. 김씨의 휴대전화에는 도박빚을 독촉하는 문자메시지나 문서 형태의 기록이 남아있었다.

검찰이 동남아에 원정도박 브로커로 진출한 조폭을 파악한 결과 범서방파 뿐만 아니라 ‘학동파’ ‘영산포파’ ‘청주파라다이스파’ 등 계파를 초월해 새 사업영역에 뛰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지역별로 카지노를 나눠 관리하는 식으로 상호 공존했다.

그러나 도박빚을 받아낼 때는 협박·공갈 등 ‘구세대 조폭’의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검찰 관계자는 “국내 수금에 폭력조직이 관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조폭의 자금원을 밝히는 측면에서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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