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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블로그] ‘청소년 담배셔틀 500원 할아버지’를 아시나요

[현장 블로그] ‘청소년 담배셔틀 500원 할아버지’를 아시나요

조용철 기자
입력 2016-01-07 22:48
업데이트 2016-01-0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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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방학땐 소주값 못벌어서 아쉽지”

7일 오전 11시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은행공원. 두꺼운 외투를 입고 공원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걸로 보였던 한 남학생이 할아버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말을 몇 마디 나누는가 싶더니 5000원짜리 한 장을 받아든 할아버지가 담배 가게로 향합니다. 학생은 근처 화장실로 들어가 자리를 피합니다. 걸음걸이조차 힘겨운 할아버지는 학생을 찾아 담배를 건네고, 잔돈 500원을 호주머니에 넣습니다. 말로만 듣던 ‘할아버지 담배 셔틀’은 5분 만에 이렇게 이뤄졌습니다. 올해 71세인 이씨 할아버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입니다. “방학이니까 애들이 없어서 아쉽지. 세 번만 하면 소주 한 병 값이 나오는데.”

●흡연 중고생들 사이에서 ‘성지’로 유명

은행공원은 주변 중고생들 사이에서 이른바 ‘성지’로 불립니다. 거기에 가면 담배 심부름에 응해주는 할아버지들이 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엔 노숙인들도 끼어 있습니다. 할아버지들이 낮 동안 공원을 지키다 귀가하면, 담배 심부름 의뢰는 노숙인에게 갑니다.

하루 20차례 이상 담배 가게를 찾아 ‘500원 할아버지’로 불리던 할아버지도 있었다고 합니다. 공원에 있던 김모(69)씨는 “용돈 벌이가 된다는 소문이 퍼졌다”면서 “나도 중학생 녀석한테 한 번에 네 갑을 사다준 적이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실제 6~7일 사이 목격된 다섯 차례의 심부름은 모두 다른 할아버지들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급기야 지난해 5월에는 담배 셔틀에 대한 신고가 이어지자 관할 금천경찰서가 단속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협조요청 공문을 구청이나 학교에 보내고 담배가게 주인들을 상대로도 안내를 했습니다. 현행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의 의뢰를 받아 청소년유해약물 등을 구입해 청소년에게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 실제 입건된 사례는 총 3차례. 담배 심부름이 아니라고 주장할 경우 입증이 어려운데다 불우한 노인들을 형사처벌하는 게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경찰의 현실적인 고민도 있는 듯합니다.

이날 오후에도 학생들과 할아버지들의 불편한 만남은 이어졌습니다. 빈곤의 덫에 빠진 노인들이 손자뻘 되는 아이들의 담배 심부름을 해주고 감지덕지 몇 푼 챙겨 가는 씁쓸한 풍경. 2016년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2016-01-0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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