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전환 3년> 경리단길인가 회나무로인가…주민도 잘 모르는 도로명

<주소전환 3년> 경리단길인가 회나무로인가…주민도 잘 모르는 도로명

입력 2016-06-09 09:29
업데이트 2016-06-0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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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본다’ ‘실생활과 겉돈다’ 반응 여전…주소 변경 속출, 정착에 방해현상 유지하면 일본처럼 주소전환 실패할 수도…“생활에서 자주 접할 수 있게 해야”

서울 용산구의 명소 경리단길은 맛집과 카페, 개성 있는 상점이 많아 각종 매체에 다뤄져 전국적으로도 인지도가 높다. 경리단길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1960년대 이래 수십년간 옛 육군중앙경리단이 있었던 데서 유래됐다.

이 길의 도로명주소는 사람들이 부르는 대로 ‘경리단길’일까. 아니다. 경리단길과 그 일대 샛길에는 ‘회나무로’ 또는 ‘회나무로XX길’과 같은 이름이 붙어 있다. 하지만 경리단길은 알아도 회나무로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로명주소 이용 실태를 취재하고자 서울 시내에서 택시를 이용하면서 열 차례 문의한 결과, 회나무로를 아는 기사는 한 명도 없었다.

용산구에 2013년부터 사는 직장인 김남권(36)씨 역시 “회나무로라는 길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며 고개를 저었다.

관할 구청은 시민에게 친숙한 경리단길 대신 낯선 회나무로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도로명주소를 정할 당시 용산구의 공고문에는 예정부터 이 일대가 ‘회나무가 있는 벌판’이라는 뜻으로 ‘회나무께’라고 불렸다는 설명이 나와 있다. 지금 회나무가 있는 벌판은 사라졌지만 육군중앙경리단보다 더 유서 깊은 이름인 셈이다.

◇ 원칙없이 바뀌는 도로명주소, 혼란 초래

최근에는 국제적 표준으로 주소를 전환하는 데 찬성하면서도 국내 도로명주소가 ‘역사성을 없앴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도입 초기 국민의 관심이 낮은 상태에서 한꺼번에 도로명을 지으면서 지역의 고유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위 회나무로와 경리단길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역사성의 기준에 시각차가 존재한다.

또 역사성을 반영한 회나무로와 같은 이름을 놓고도 ‘어딘지 도대체 모르겠다’거나 ‘주민의 일상에 밀착되지 않아 겉돈다’는 불만도 나오는 실정이다.

부동산 가격 등 재산가치를 따지느라 역사성 있는 옛 명칭이 홀대를 받거나 도로명이 중간이 갑자기 바뀌기도 한다.

성남시의 ‘봇들로’가 ‘판교역로’로, 남부순환로의 일부가 ‘삼성로’로 등으로 바뀐 게 자주 언급되는 사례들이다.

사용자의 20% 이상만 동의하면 도로명주소 변경을 신청할 수 있고, 자치단체는 주민의 요구를 외면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런저런 이유로 도로명주소 변경도 잇따른다.

2013년부터 작년까지 3년간 도로명주소위원회 심의를 거쳐 변경된 도로명주소는 270여 건이나 된다.

도로명주소 잦은 변경은 이용자의 혼란을 키우고, 제도의 장점을 퇴색시킨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연속된 길의 중간에서 갑자기 도로명이 바뀐다든지, 도로명주소가 자주 변경되면 주소제도 개혁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헌주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주소가 자꾸 바뀌면 도로명주소가 무질서해지고 혼란을 부른다”면서 “처음 주소를 정할 때 지역의 역사성과 주민의 공감대를 충분히 반영하고, 일단 정해진 주소는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이정표와 표지판, 지도 보급 노력해야”

도로명주소가 친숙해지려면 도로명주소를 쓰는 데 불편함이 없게 온라인 이용자 환경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자주 도로명주소에 노출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박헌주 교수는 “도로명주소 도입 초기 행정 전산망과 시스템 구축에 치중하느라 거리에 도로명 이정표나 건물번호판을 설치하는 데 상대적으로 미흡했다”면서 “길이 꺾이는 곳이나 건물 벽면, 복잡한 도로 곳곳에 잘 보이게끔 이정표와 건물번호판을 많이 설치하고, 관공서나 숙박업소에서 주변 지도를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법정주소 개편 첫해인 2014년과 작년에 도로명판 21만개를 부착한 데 이어 올해도 5만5천개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주소전환 전 36만9천개이던 도로명판이 올해 연말까지 2배 정도 많은 63만5천로 늘어나게 된다.

건물번호판도 2년간 13만8천개를 부착했고, 올해도 4만7천개 이상을 붙일 예정이다.

중앙도로주소위원회의 이수영 위원(리드파워 이사)은 “도로명주소가 생활 속에 정착하도록 민간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면서 “현상 유지만 하다가는 법정주소와 ‘생활 주소’의 괴리가 지속하고, 일본처럼 국제 표준 도입에 실패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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