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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전 헌법재판관 “탄핵심판, 모두에 고통스러운 역사”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 “탄핵심판, 모두에 고통스러운 역사”

입력 2017-05-18 14:22
업데이트 2017-05-1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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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 첫 공식석상서 소회 밝혀…“법치·민주주의 도약 계기되길”

탄핵심판 재판장으로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을 읽었던 이정미(55) 전 헌법재판소장 대행이 퇴임 후 첫 공식 석상에서 “탄핵심판 사건은 국민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역사였다”고 말했다.

퇴임 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초빙된 이 교수는 18일 오전 서울 성북구 고려대 CJ법학관에서 열린 고대 법전원과 미국 UC얼바인 로스쿨 공동학술대회에서 ‘한국의 헌법재판과 민주주의의 발전’ 주제로 발표했다.

올해 3월13일 퇴임한 후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교수는 탄핵심판 당시보다 헤어스타일이 짧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검은색 정장과 함께 착용한 빨간 빛의 뿔테 안경은 여전했다.

이 교수는 헌법재판소가 한국 민주주의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중심으로 발표했다. 그는 발표 내내 자신이 퇴임 전 6년간 근무하고 소장 대행까지 맡았던 헌법재판소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 교수는 “한국 국민들은 과거 오랫동안 권위주의 체제를 경험했고, 이를 무너뜨리고 기본권을 보장받는 민주국가 건설을 염원했다”면서 1988년 헌재가 창설한 이래 우리 사회와 정치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굵직한 결정들을 소개했다.

제소자와 재외국민에 선거권을 주지 않았던 선거법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 호주제 위헌 결정,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등을 나열한 다음, “여러분이 궁금해하실 부분이고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결정”이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 관해 입을 뗐다.

이 교수는 한국 헌법에 명시된 탄핵심판 절차와 박 전 대통령 탄핵 소추 과정을 간략히 소개한 다음, “이 사건은 재판관이나 국민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역사의 한 부분이고 사상 최대의 국가위기 사태였다”고 돌아봤다.

그는 “우리(헌법재판소)는 92일간 거듭 고뇌한 끝에 결정을 내렸고, 대다수 국민이 승복하셨다”면서 “돌이켜보면 약간의 혼란스러운 사태는 있었지만 유혈사태 같은 큰 혼란 없이 비교적 빠르게 국정 공백이 평화적으로 수습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매우 아프고 힘들 결정이었다”면서 “하지만 한국 속담에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했듯, 힘들고 어려웠지만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한 걸음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서 “탄핵심판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의 짧은 민주주의 역사에 중요한 고비마다 헌법재판소가 있었다”면서 “헌재가 국민의 기본권을 확고하게 보장하면서 한국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공고히 발전시킨 수호자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강연을 마친 후 취재진이 근황을 묻자 “학교에 나오고 있다”고 짧게 답했다. 차기 대법원장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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