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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도 생명”, “여성 몸 통제말라”…헌재 결정 앞두고 갑론을박

“태아도 생명”, “여성 몸 통제말라”…헌재 결정 앞두고 갑론을박

강경민 기자
입력 2019-04-07 10:16
업데이트 2019-04-0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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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관련 헌법소원 11일 선고 전망…산모 자기결정권·태아 생명권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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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23개 단체가 모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 행동’이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낙태죄 폐지 찬성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0일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23개 단체가 모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 행동’이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낙태죄 폐지 찬성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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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원표공원에서는 47개 보수 단체가 ‘낙태 반대 국민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0일 원표공원에서는 47개 보수 단체가 ‘낙태 반대 국민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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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놓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곧 나올 것으로 전망되자 낙태 찬반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헌재가 심리해온 사건은 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다. 두 조항의 위헌성을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헌재의 판단이 오는 11일 선고기일에 나올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낙태죄를 유지하라는 쪽에서는 ‘태아도 생명’이라며 낙태를 처벌하지 않으면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할 것으로 우려한다.

반면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낙태 처벌 조항이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 등 기본권을 제한한다며 당장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태아도 똑같은 생명…낙태죄 유지해 생명 존중해야”

태아도 성인과 같은 엄연한 생명인 만큼 생명권을 지켜줘야 한다는 게 낙태죄 존치론의 가장 대표적인 근거다.

낙태죄를 옹호하는 단체들은 낙태가 허용된 사회를 ‘핸들이 고장 난 자동차’에 비유하며 생명윤리의 중앙선을 마구 넘나들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낸다.

송혜정 낙태죄폐지반대국민연합 대표는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규정은 생명을 존중하기 위한 것”이라며 “낙태죄가 무너지면 이후의 생명윤리와 관련된 법들이 모두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송 대표는 “남녀가 공동으로 양육 등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등 사회경제적 해법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며 “이렇게 국가가 나서서 건강하게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낙태 허용부터 하자는 건 조급하고 잘못된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도 헌재 판결을 앞두고 최근 연이어 낙태죄 폐지 반대 의견을 냈다.

염 추기경은 이달 2일 담화문에서는 “여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형법의 낙태죄 조항이 아니라 낙태로 내몰리는 여러 가지 상황”이라며 “그들을 위한 배려는 낙태의 합법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임신·출산·양육을 지원하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과 올바른 교육 등을 대책으로 내세우면서 “국가와 사회는 낙태 합법화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임신한 여성과 태아 모두를 낙태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국가가 여성의 몸 통제해선 안 돼…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수”

여성단체와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낙태죄 폐지를 주장한다. 이들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면서 산아 제한을 두거나 출산을 장려하는 식으로 국가가 필요에 따라 여성의 몸을 통제해 온 역사를 낙태죄 위헌 결정으로 끝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한 전면 비(非)범죄화, 포괄적 성교육과 피임 접근성 확대, 유산 유도제 도입을 통한 여성 건강권 보장,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 낙인과 차별 없는 재생산권 보장 등을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다.

이들은 여성이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고, 안전하게 수술을 받아 여성의 몸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여성·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111주년 여성의 날이던 지난달 8일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폐지론에 힘을 실었다.

이들은 “111주년 세계여성의날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도 임신을 중지한 여성을 처벌하고, 범죄화하는 낙태죄는 여전히 우리의 인권을 억압하고 있다”며 “우리는 더 이상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안에서 인공임신중절 사유를 허락받고,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머무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여성의 몸을 불법화하는 낙태죄는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며 “헌재는 형법 ‘낙태죄’에 대한 위헌 결정으로 답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종전까지는 태아의 생명권 더 중시…이번에는?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은 2012년 8월 23일에 이미 내려진 바 있다.

당시 헌재는 재판관 4대 4 의견으로 “태아는 모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생명권이 인정된다”며 낙태죄 처벌이 합헌이라고 봤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등에서 드러난 6기 헌법재판관들의 낙태죄 관련 인식은 이전과는 달리 전향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남석 헌재소장과 이은애 헌법재판관이 낙태죄 처벌에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고, 이종석·김기영·이영진·이석태 헌법재판관 역시 처벌 필요성에 신중한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 6명이 낙태죄 처벌에 대해 위헌요소가 있다고 판단을 내리면,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는 서기석·조용호·이선애 헌법재판관의 판단과 상관없이 위헌 결정이 나올 수 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찬성하면 위헌 결정이 나온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낙태 관련 헌법소원은 산모의 자기결정권 문제와 태아의 생명권이 충돌하는 문제”라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그동안에는 태아의 생명권에 무게를 많이 뒀지만,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고 권리의식이 강화하는 등 사회의 가치관이 변하고 있다. 가치관의 중심이 태아보다는 모체의 권리를 더 중시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봤다.

그는 “비록 헌재에서 여러 차례 낙태죄 합헌 판단을 내리긴 했지만, 최근 들어 위헌 의견이 과거보다 많이 늘었다”며 “우리 사회 전반적인 경향은 점점 더 위헌 쪽으로 기울 것이라고 본다. 위헌 결정이 내려지는 시점이 지금이냐, 아니면 좀 더 나중이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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