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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 부모 동의 필수 아니다”

법원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 부모 동의 필수 아니다”

오세진 기자
입력 2019-07-04 20:05
업데이트 2019-07-0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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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동의가 성별 정정에 있어 필수가 아니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4일 공익 인권변호사 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희망법)에 따르면, 인천가정법원은 부모 동의서를 제출하지 못한 20대 후반 트랜스젠더 여성 A씨의 성별 정정 신청을 허가해 신청을 기각한 1심 결정을 뒤집었다.

A씨는 어린 시절부터 확고한 여성으로서의 성별 정체성을 갖고 현재 여성으로서 사회 생활을 하고 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성 전환 수술을 받는 등 법원의 성별 정정 허가를 받기 위한 요건을 모두 충족했다. 하지만 대법원 예규가 요구하는 서류 중 부모 동의서를 제출하지 못했다. A씨 부모는 종교적인 이유로 A씨의 정체성을 거부했고, A씨는 부모와의 관계가 단절됐다.

1심인 인천가정법원 부천지원은 A씨의 성별 정정 신청을 기각했다. 결정문에는 기각 사유가 적혀 있지 않지만 A씨가 부모의 동의를 받지 못한 점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희망법은 말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원심 결정을 취소하고 A씨의 성별 정정을 허가했다. 재판부는 A씨의 성별 정정에 부모가 부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지만 성년자녀에 대한 부모의 동의 여부가 성별 정정 허가에 필수 요건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A씨가 이미 오랜 기간 여성의 주체성과 자아를 가지고 생활했고, 자신의 상태에 관해 고민하고 신중한 결정을 내린 이상 부모의 동의가 없더라도 이것이 A씨의 성별 정정을 불허할 직접적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2006년 제정된 대법원 예규는 성별 정정 허가 신청 시 부모 동의서를 첨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부모 동의서 제출은 같은 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에서 성별 정정을 위한 요건으로 설시한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예규에 포함됐다는 것이 희망법의 설명이다.

희망법은 이날 논평을 통해 “성년의 성별 정정에 부모의 동의를 요구하는 국가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대법원 예규에 근거해 많은 법원들에서는 부모의 동의를 요구했다. 이는 종교적 이유나 사회적 낙인으로 부모에게 자신을 인정받지 못하는 트랜스젠더들이 많은 현실에서 성별 정정의 실질적 장벽이 됐다”고 지적했다. 희망법이 지난해 트랜스젠더 70명을 대상으로 성별 정정 경험을 조사한 결과 45.7%가 부모의 동의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희망법은 “이번 결정이 하나의 사례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트랜스젠더가 처한 구체적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불필요한 서류를 요구해 오히려 고통을 가하고 있는 현행 대법원 예규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미 국제적으로는 성별 정정이 트랜스젠더가 존엄과 평등을 향유하기 위한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고 있고 아르헨티나, 덴마크, 아일랜드, 노르웨이 등 자기결정권에 기반한 성별 정정을 보장하는 국가들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면서 “국회와 정부 역시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트랜스젠더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성별 정정 특별법을 제정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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