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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여성들 ‘내가 박원순 피해자와 연대하는 이유’

분노한 여성들 ‘내가 박원순 피해자와 연대하는 이유’

이근아 기자
입력 2020-07-15 16:01
업데이트 2020-07-1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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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후원·독서인증으로 연대
“피해자 목소리가 수많은 여성들 구했다”

박원순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인 한국 여성의 전화에 문자 후원을 했다는 인증글 트위터 캡처
박원순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인 한국 여성의 전화에 문자 후원을 했다는 인증글
트위터 캡처
20대 중반 대학생 최은정(가명)씨는 최근 한국여성의전화에 문자 후원을 한 뒤, 인증샷과 함께 ‘#박원순_시장을_고발한_피해자와_연대합니다’라는 내용의 해시태그(#)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피해자 지원단체인 여성의전화에 후원을 하고 피해자와 연대하겠다고 결심한 건 최씨 본인의 경험 때문이다. “여성의전화가 주최하는 행사에서 용기 내 데이트 폭력 피해 경험을 말한 적이 있다”는 최씨는 그날 처음으로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는 “묵묵히 들어주던 사람들의 공감과 위로 덕에 그간 나를 붙잡고 있던 폭력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남 아닌 우리 이야기···용기 고맙다” 연대 물결
박 전 시장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받았다고 폭로한 전직 비서 A씨를 향한 연대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15일 서울신문은 SNS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피해자와 연대하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피해자의 호소를 보며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피해자에게 연대하고 있었다.

이들은 “피해자의 호소는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라고 입을 모았다. 최씨도 딸 뻘인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던 선생님, 사적으로 자꾸만 연락하던 아르바이트 가게 사장님, 호감을 표시해 완곡히 거절했더니 화를 냈던 학교 선배 등 애써 묻어뒀던 기억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는 “나서서 얘기했다가 괜히 예민한 사람으로 몰릴까봐, 이해심이 없는 사람이 될까봐 매 순간 두려웠다”면서 “모든 걸 감수하고 세상을 바꾸려 입을 연 피해자를 응원하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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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원순 시장 향한 ‘두 개의 시선’
故 박원순 시장 향한 ‘두 개의 시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을 둘러싼 시민들의 반응이 갈리고 있다. “떳떳한 죽음은 아니지 않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빈소가 마련된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밖에서 지난 10일 한 시민이 1인 시위를 벌이는 모습(오른쪽). 팻말에는 ‘어떤 자살은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오마이뉴스
“위력에 의한 성추행 반복···무력감 느끼기도”
여성들은 최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박 전 시장까지 위력에 의한 성폭력·성추행 사건들이 반복해 발생하는 데에 큰 분노를 표현했다. 특히 사건 발생 이후에도 계속되는 가해자들의 거대한 권력 앞에 무력감을 느낀다는 여성들이 많았다. 30대 김서연(가명)씨는 “안 전 지사 모친상에도 유력인사들이 보란 듯이 찾아와 조문하는 것에 이미 충격을 받았었는데, 박 전 시장 문제도 비슷하게 반복돼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 김씨도 피해자 지원단체를 후원하며 연대했다. 그는 “나 역시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는 성인 여성으로서 박 전 시장의 피해자 분의 목소리가 이 땅의 수많은 여성들을 구해줬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고발한 김지은씨의 책 ‘김지은입니다’를 구매했다는 인증글이 SNS를 통해 연대의 한 방식으로 번지고 있다 트위터 캡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고발한 김지은씨의 책 ‘김지은입니다’를 구매했다는 인증글이 SNS를 통해 연대의 한 방식으로 번지고 있다
트위터 캡처
용기 내 피해를 폭로한 피해자가 출판한 책을 읽거나 선물하는 ‘독서인증’도 번지고 있다. 출판계에서 일한다는 30대 서은주(가명)씨는 피해자를 연대하는 내용의 글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책을 선물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서씨가 준비한 책은 안 전 지사의 성폭력을 고발한 피해자 김지은씨의 ‘나는 김지은입니다’였다. 그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출판계 내 성폭력, 임금 차별, 불안정 노동 등 불합리한 처우를 견디는 동료들과 후배들을 많이 봐왔다”면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여성에게 그저 응원의 뜻이라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편에 서는 사회의 분위기가 바뀔 때까지 연대하겠다고 했다. 최근 ‘나는 김지은입니다’ 책을 읽고 인증샷을 공유한 30대 이다혜(가명)씨 역시 “이런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사람들은 마치 자신과 관련 없다는 듯이 가해자에게 감정이입하고 ‘왜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느냐’며 피해자에게 손가락질을 한다”면서 “그러나 피해자는 나 이기도 하고, 내 친구이기도, 출근길에 같은 버스를 타는 누군가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가 쓴 책을 읽는 사람이 있음을, 피해자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도록 연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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