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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구 항일운동 한 눈에… 보성학교 전시관 개관

울산 동구 항일운동 한 눈에… 보성학교 전시관 개관

박정훈 기자
박정훈 기자
입력 2021-02-19 13:25
업데이트 2021-02-1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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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울산 동구에 문을 연 보성학교 전시관. 울산 동구 제공.
최근 울산 동구에 문을 연 보성학교 전시관. 울산 동구 제공.
울산 동구의 항일운동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보성학교 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20일 울산 동구에 따르면 보성학교 전시관은 옛 보성학교 운동장 자리인 일산진마을 주민 공동이용시설 내 지상 1층(연면적 134㎡) 규모로 최근 건립됐다.

전시관에는 보성학교를 중심으로 동구 항일운동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가 비치됐다. 또 민족 사립 보성학교의 역사와 성세빈(1893∼1938) 선생의 생애, 유품인 탁자와 반닫이, 호롱불을 비롯해 1920~1930년대 항일운동 관련 기사도 전시됐다.

보성학교 졸업 대장(복사본) 등 유물을 비롯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울산 동면의 소년운동과 청년운동, 일제 수탈에 맞선 동구 주민 활약상에 대해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보성학교는 1909년 설립됐다가 일제 탄압과 재정문제 등으로 1912년 폐교됐다. 당시 동구지역 유지였던 성세빈 선생이 사재를 털고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1922년 다시 학교를 열었다. 동생인 성세륭, 외사촌인 서진문을 비롯해 김천해, 박학규, 이효정·박두복 등 당시 대표적인 항일지사들이 보성학교 교사로 교편을 잡기도 했다.

보성학교 출신들은 적호소년단과 5월 청년동맹, 신간회 등을 결성해 항일운동을 지속했다. 보성학교가 일본 사람들에게 밀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던 당시 동구지역 학생들에게 글자와 학문을 가르치며 민족정신을 높이는 교육과 항일 운동의 구심점이 됐다.

이에 일제는 1929년 폐쇄 명령을 내렸고 교장인 성세빈 선생이 학교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폐쇄를 막아냈다. 1945년 강제 폐쇄될 때까지 21회에 걸쳐 졸업생 499명을 배출했다.

성세빈 선생은 46세에 사망했다. 주민과 졸업생들이 1940년에 그의 공덕을 기리는 송덕비를 세웠고, 현재 보성학교 전시관 야외마당으로 옮겨졌다.

동구 관계자는 “보성학교 전시관을 통해 일제 수탈에 맞서 민족정신을 지켜내는 중심 역할을 한 보성학교가 제대로 평가받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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