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형카메라 판매 전자기기 매장 가보니
“지하철서 찍으려는데 추천 좀…” 말하자더 묻지도 않고 USB 모양 카메라 건네
“카메라 탐지기 안 걸려” 호언장담까지
액자·라이터 등 실제 제품과 구분 안 돼
판매이력 등록 등 규제방안 국회 계류 중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변형 초소형카메라. 점 하나 크기의 카메라 렌즈가 달려 있어 실제 제품과 구분이 어렵다. 안경형 카메라.
17일 찾아간 서울 용산구 전자상가의 한 카메라 매장. 기자가 “지하철에서 찍으려고 하는데 좋은 제품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매장 주인이 이동형저장장치(USB)처럼 생긴 카메라를 꺼내 보이며 사용 방법을 시연했다. 상인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들이 변형카메라를 많이 찾는다”며 “불법촬영에 이용하려고 사기도 하고 구두 계약 등 증거를 확보하려고 찾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변형 초소형카메라. 점 하나 크기의 카메라 렌즈가 달려 있어 실제 제품과 구분이 어렵다. 볼펜형 카메라.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이 지난 16일 한국의 디지털성범죄를 고발한 보고서 “내 인생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를 내놓자 여성들은 경악했다. HRW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 여성 12명 등을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간 심층 면담한 내용이 자못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예린(가명)씨가 유부남인 직장 상사에게 선물 받은 탁상시계를 침실에 한 달여간 두었는데 알고 보니 카메라가 내장된 불법촬영기기였다고 밝힌 대목에서 “이런 제품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는 게 끔찍하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변형 초소형카메라. 점 하나 크기의 카메라 렌즈가 달려 있어 실제 제품과 구분이 어렵다. 카드지갑형 카메라.
여성들은 언제, 어디서 불법촬영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을 호소했다.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범죄예방 팁까지 공유된다.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다양한 형태의 변형카메라는 주로 범죄와 밀접한 용도로 사용되는 게 현실이지만 규제가 없어 불법촬영 범죄를 부추기고 있다”고 우려했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변형 초소형카메라. 점 하나 크기의 카메라 렌즈가 달려 있어 실제 제품과 구분이 어렵다. USB·차량 열쇠형 카메라.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현행법상 불법촬영물을 유통 및 소지하고, 재유포하는 행위 말고는 별다른 규제책이 없어 변형카메라를 이용한 범죄가 법망을 빠져나갈 여지가 너무 많다”며 “변형카메라 유통을 제재하는 법을 현실화하려면 변형카메라 사용을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먼저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2021-06-18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