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재판 보장’ vs ‘재판 지연 수단’… 법관 기피제 논란 가열

‘공정 재판 보장’ vs ‘재판 지연 수단’… 법관 기피제 논란 가열

박기석 기자
박기석 기자
입력 2023-12-05 17:37
업데이트 2023-12-0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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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 기피 신청 7년 사이 두 배 증가
신청하면 소송 중단되는 점 악용
신청 인용은 거의 없어 사문화 지적도
“기피 관련 판례 공개해 당사자 수긍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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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사건 제척·기피·회피 현황
형사 사건 제척·기피·회피 현황
2013년 김포공항에서 예약이 잘못됐다며 항공사 직원에게 욕설과 폭행을 하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의 멱살을 잡았던 A씨는 이듬해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담당 판사가 공정하지 않다며 재판에서 빼달라는 기피 신청을 2015년과 2016년, 2018년 세 차례에 걸쳐 냈고 그때마다 소송은 중단됐다. 이런 신청은 모두 기각됐지만 A씨는 2019년과 2020년 또다시 기피 신청을 했다. 재판부는 소송을 지연하려는 목적이라며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재판 절차를 밟느라 사건 발생 7년 후인 2020년에야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할 수 있었다.

법관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을 때 소송 당사자가 재판을 거부할 수 있는 ‘법관 기피 제도’가 재판 지연 등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피 신청을 하면 소송 절차가 중단된다는 점을 이용해 불리한 재판을 미루거나 재판부를 교체하는 이른바 ‘재판부 쇼핑’을 통해 유리한 결론을 이끌어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화영 전 경기 평화부지사가 최근 연달아 법관 기피 신청을 낸 사실이 알려져 이런 논란이 커졌다.

실제 법관 기피 신청은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전국 지방법원 형사 사건에서 기피 신청 접수는 ▲법관이 법률에 정해진 요건에 따라 재판에서 배제되는 ‘제척’ ▲법관이 스스로 재판에서 물러나는 ‘회피’까지 포함해 총 282건이었다. 2015년 138건에서 7년 새 약 두 배 늘었다. 법원 안팎에서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 점 외에도 A씨의 경우처럼 재판을 지연하고자 반복적으로 기피 신청을 하는 경우가 늘어난 영향이 큰 것으로 본다.

일각에선 법원이 기피 신청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도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한다. 법원이 기피 신청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기각만 하는 탓에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제도가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것이다. 지방법원 형사 사건에서 제척·기피·회피 신청이 받아들여진 인용 건수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10건에 불과하다. 지난해는 1건이 전부였다. 이처럼 법관 기피제 인용률이 낮은 이유는 법관이 정식 재판을 거치지 않고 비교적 쉽게 기피 신청을 배척할 수 있는 ‘간이’ 각하·기각 제도의 영향이 꼽힌다. 민사소송법 등에 따르면 법관 기피 신청이 소송 지연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분명한 경우엔 이를 각하·기각하는 방법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대법원도 법관 기피 제도를 활성화하되 신청 남용은 규제하는 방안을 연구 용역을 통해 모색한 바 있다. 간이 각하·기각의 사유인 ‘소송 지연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를 구체적으로 정해두자는 제안이 나왔다. 한 판사는 “재판 당사자의 법관 기피 신청을 받아들이거나 기각한 대법원의 판례들을 국민에게 공개해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당사자가 수긍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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