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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돼지오줌보의 추억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돼지오줌보의 추억

입력 2011-07-18 00:00
업데이트 2011-07-1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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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추렴해 돼지라도 잡는 날은 왁자한 잔치판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물론 소가 못 된 돼지라고 아무 때나 잡지는 않습니다. 농사일 바쁠 때는 손이 모자라 잡으려고 해도 잡을 이가 없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봄가을 새 돼지가 새끼를 배고 낳을 때는 아무리 육물이 당겨도 함부로 잡아먹을 생각 안 하는 게 사람 도리지요. 게다가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라 여름에 기름진 고기 잘못 건사하다가는 상하기 십상이고, 그걸 먹고 배앓이 한 사람이 적지 않아 “여름 돝괘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라고도 했습니다.

그건 그렇더라도 돼지 잡는 날이면 애들의 관심은 오로지 오줌보에 쏠립니다. 칼을 든 숙수가 싹뚝 잘라 건네는 오줌보는 참 희한한 놀이기구였습니다. 속을 비워 잔뜩 바람을 불어넣은 뒤 주둥이를 꽁꽁 동여매면 살갗에 닿는 감촉이 촉촉한 ‘바이오볼(Bio-ball)’이 되지요. 마당 한쪽에서 그걸로 공놀이를 하곤 했습니다. 가죽이 아니라 딴딴해지도록 바람을 불어넣지 못해 차도 날아가지 않는 쭐쭐한 공이었지만 그래서 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걸 차고 노느라 이마에 진득 땀이 밸 때쯤이면 한뎃솥에서 선지순대 익는 냄새가 구수하게 번지고, 어른들은 그걸 안주 삼아 막소주를 마시며 모처럼 묵은 피로를 씻곤 했습니다.

그 오줌보가 바로 방광입니다. 콩팥에서 혈액을 거르고 남은 노폐물, 즉 오줌을 저장했다가 적당한 양이 모이면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장기지요. 그렇다고 결코 간단한 장기가 아닙니다. 이 방광에서 생기는 병이 하나, 둘이 아닌 탓입니다. 아무리 치료해도 시원하게 낫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방광염이 이곳에 감염증이 생기는 병이고, 복압성 요실금도 방광의 문제입니다. 더러는 이곳에 암이 생겨 고생하는 사람도 있고, 과민성 방광으로 노후의 삶에서 지린내를 풍기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흔히 방광을 잊고들 삽니다. 위나 간, 폐나 장처럼 중요하다고 인식하지 않는 탓입니다. 그러나 기능이 다르다고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손톱 밑에 가시만 들어도 죽네, 사네 하는 게 사람이니까요. 더러는 잊고 사는 방광 같은 장기도 한번쯤 되돌아보면서 갈 일입니다.

jeshim@seoul.co.kr

2011-07-18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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