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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후유증” vs “불안해” 갑상선암 수술 할까 말까

“평생 후유증” vs “불안해” 갑상선암 수술 할까 말까

입력 2014-03-24 00:00
업데이트 2014-03-24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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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하지 않아도 일반인과 생존율이 비슷하고 일상생활에 거의 지장이 없는 갑상선암의 수술 여부를 놓고 의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핵심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이다. 당장 수술할 필요가 없다는 쪽은 수술 후 갑상선기능저하를 막기 위해 평생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하는 고통과 부작용이 수술 효과를 상회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쪽은 암이 전이될까봐 평생 불안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수술하는 쪽이 삶의 질적인 측면에서 더 긍정적이라고 한다. 제대로 된 의학 정보가 없는 환자는 이들 가운데 끼여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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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배혜정(35)씨는 만성피로에 시달리다 지난해 서울의 한 병원에서 갑상선암 검사를 받았다. 초음파 검사 결과 1cm 미만의 혹이 발견됐고 암으로 확인돼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 전보다 심한 피로가 밀려와 오히려 삶의 질은 떨어졌다. 호르몬을 분비하는 갑상선이 없으니 평생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하는 고통도 생겼다. 배씨는 “내 몸에 암세포가 있다니 불안해 수술을 받았지만, 돌이켜 보면 위험하지 않은 암이라는데 굳이 갑상선을 잘라내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반면 배씨와 비슷한 케이스로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주부 김지영(51)씨는 “암 환자 입장에서 전이, 악화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사는 것은 힘들다”면서 “수술 전 상황으로 돌아가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갑상선암은 발견 후 수개월에서 수년 사이에 생사가 결정되는 다른 암들에 비해 공격성이 현저히 낮고 진행 속도가 매우 느려 ‘착한 암’ 또는 ‘거북이암’으로 불린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암센터가 2007~2011년에 발생한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을 분석한 결과 암이 처음 발생한 장기에만 국한된 경우 갑상선암 환자의 생존율은 일반인과 차이가 없었다. 암이 주위 장기와 인접한 조직을 침범한 경우도 90%가 넘는 높은 생존율을 보였다. 진행이 빠르고 악성인 갑상선역형성암도 있지만 한국인의 경우 발생빈도가 1% 미만으로 극히 낮다. 한국인에게 발견되는 갑상선암의 95% 이상은 대표적인 ‘거북이암’인 갑상선유두암이다.

자신이 갑상선암 환자라는 사실을 평생 모르고 산다고 해도 괜찮을 만큼 순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아무 증상이 없는 데도 건강검진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해 의사의 권유를 받고 수술하는 경우다.

갑상선은 몸의 기능을 적절하게 유지시켜 주는 호르몬을 분비하는 기관으로, 목 앞부분 후두 바로 아래에 있다. 갑상선 기능이 저하되면 쉽게 피곤해지고 졸리며 두통이 생기고 집중력이 감소한다. 또 추위를 더 많이 느끼고 소화가 잘되지 않아 구역질이나 변비가 생길 수도 있다. 갑상선의 일부만 절제하는 수술도 있지만, 통째로 떼어내는 수술을 하게 되면 호르몬 분비 기관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에 이런 증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갑상선암으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매일 갑상선호르몬제를 복용한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의사는 “수술을 받으면 암 환자라는 딱지가 붙게 되고 30~40년간 갑상선기능저하증을 달고 살아야 하는데다 수술 환자의 0.5%는 부작용으로 성대 신경이 마비되기도 한다”면서 “이득 없는 수술”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류준선 국립암센터 갑상선암센터장은 “갑상선에 생긴 대부분의 혹은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그냥 둬도 상관없지만 10%는 공격적 성향이 있다”면서 “현재로선 공격적인 10%를 구분해 낼 방법이 없다 보니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수술을 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찍 치료를 해야 수술 합병증도 적게 오고 재발 가능성도 낮기 때문에 과잉치료를 피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류 센터장은 “대부분의 환자들이 갑상선암 진단을 받으면 잠도 못 자고 불안에 시달린다”며 “심리적인 측면도 무시 못한다”고 덧붙였다. 무증상 미세암의 수술을 반대하는 의사들도 갑상선암 환자 입장에서 수술을 미루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래서 이들은 보다 근본적 문제인 갑상선암 검진 남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립암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86년 인구 10만명당 남녀 각각 0.76명, 3.9명이던 갑상선암 발병률은 2011년 인구 10만명당 81명으로 30배나 늘었다. 세계 평균의 10배가 넘고 영국보다는 무려 17.5배가 많다. 선진국 가운데 갑상선암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른 미국도 지난 35년간 3배만 증가했다. 우리와 비교가 안 되는 수치다. 갑상선암이 해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이로 인한 사망률은 변함이 없다. 과잉 검진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재호 가톨릭대 의과대학 교수는 “2000년대 이후 초음파 진단기 개발기술이 빠르게 발전한 데다 병원들이 수익을 뽑기 위해 무분별한 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검진으로 악성 종양을 발견했다면 다행이지만, 몰라도 될 병을 알게 된 대다수의 갑상선유두암 환자는 심리적 고통과 수술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게 되는 셈이다. 선택은 환자의 몫이지만 무조건 검진부터 권유하고 보는 병원의 행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갑상선암의 주요 발병 원인은 방사선 노출이다. 치료 때문이든, 환경 재해로 인한 것이든 노출된 방사선의 용량에 비례해 갑상선암의 발병위험도가 증가한다.

핀란드 헬싱키대는 1985년 갑상선암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놨다. 101건의 부검을 통해 얻은 갑상선을 얇게 잘라 현미경으로 관찰했더니 35.6%에서 갑상선암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이재호 교수는 “초음파 대신 현미경으로 더 세밀하게 암세포를 찾는다면 웬만한 성인들에게 갑상선 암세포가 발견될 수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2014-03-24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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