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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장준하 선생 유골 주삿바늘의 정체는

故장준하 선생 유골 주삿바늘의 정체는

입력 2013-03-27 00:00
업데이트 2013-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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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살 의심되는 증거들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선생은 경기 포천 약사봉의 12m 낭떠러지 밑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선생은 이날 오전 11시 30분쯤 약사봉 샘물터에서 일행과 함께 식사를 준비하다 김용환씨와 함께 계속 산을 올랐다. 오후 1시 30분쯤 김씨가 일행에게 돌아와 선생의 죽음을 알렸다. 이후 사고를 조사한 당국은 선생이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져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고인의 상태와 사고가 일어난 상황 등을 둘러싸고 경찰 발표에 의문이 제기됐다. 가장 큰 의문은 고인이 가파른 벼랑을 아무런 장비도 없이 내려오려다 사고를 당했다는 점이다. 고인이 발견된 곳은 경사 75도, 높이 12m의 가파른 절벽이었다. 산을 오를 때에는 멀리 등산코스를 돌아 올라간 고인이 내려올 때에는 등산 코스도 아닌 위험한 절벽 쪽으로 내려오려 했다는 것이다.

고인이 가져간 보온병과 안경이 깨지지 않은 채 멀쩡했고 절벽에서 굴러 떨어졌는데도 옷이 전혀 찢어지지 않은 점도 의문이었다. 반면 고인의 귀 뒤쪽에 흉기로 찍힌 듯한 자국과 팔과 엉덩이에 주삿바늘 자국이 발견됐다는 검안의 소견 결과가 나오면서 타살 의혹이 제기됐다.

유일한 목격자인 김씨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1967~71년 국회의원이었던 선생을 돕던 김씨는 차기 총선에서 선생이 낙선하자 떠났다가 사고 당일 갑자기 선생을 찾아와 산행에 동행했다. 사고 직후 김씨는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선생의 사고 소식을 전하러 왔을 때 김씨는 고인의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 경찰이 아닌 군부대에 사고 사실을 먼저 알린 점도 의문이었다.

일부 언론이 이러한 의문들을 기사화했으나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유언비어 날조 등)로 기자가 구속됐다. 언론사에는 서슬 퍼런 유신정권의 압력이 가해졌다. 이후 1993년과 2004년 두 차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져 타살 의혹에 대해 조사를 벌였으나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918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이승만·박정희 독재에 맞섰던 대표적인 정치인이자 재야운동가다. 일본 유학 중이던 1944년 일제 학도병으로 징집되자 중국에서 탈출, 1945년 광복군에 합류했다. 종합교양지 사상계를 창간해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이승만 독재를 비판하는 데 앞장섰고 박정희 대통령 집권 이후에는 정계에 뛰어들어 제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유신시절이던 1974년 유신헌법 개헌을 주장하다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체포돼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다. 병보석으로 풀려나 재야에 머물던 중 사망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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