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스포츠 돋보기] 승부조작 ‘실명 폭로戰’에 선수·구단 ‘벙어리 냉가슴’

[스포츠 돋보기] 승부조작 ‘실명 폭로戰’에 선수·구단 ‘벙어리 냉가슴’

입력 2011-07-06 00:00
업데이트 2011-07-06 00:3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7일로 예정된 검찰의 프로축구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또 경마경주 중계식 언론보도 레이스가 시작됐다.

혐의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유명한 선수가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사실만 확인되면 주저 없이 지면에 실명을 박는다. 그래도 이 정도는 양반이다. 승부조작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는 말만 나와도 실명을 거론한다.

그렇게 윤빛가람(경남FC), 홍정호(제주) 등 ‘조광래호의 젊은 피’이자, 올림픽대표팀의 주축들이 언론 지면을 장식했다. ‘A구단 미드필더 B선수’, ‘C구단 수비수 D선수’, 혹은 ‘국가대표 수비수 E선수’ 등의 이니셜 보도로 이미 예방주사를 맞은 여론은 이들의 실명이 거론되는 순간, 이들의 승부조작 가담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선수 이름 3~4글자가 특종이다. 이런 취재 참 쉽다.

이후 검찰 수사 결과 이들에게 혐의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그건 큰 의미가 없다. 여론은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를 기억하지, 혐의를 벗은 선수를 기억하지는 않는다.

선수도 구단도 벙어리 냉가슴이다. 이미 프로축구 전체가 승부조작의 물감으로 덧칠된 상황에서 어떤 해명을 한들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이들은 극소수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가만히 입 다물고, 고개 숙이고 있는 게 상책이다. 그렇다고 해당 언론을 상대로 싸울 수도 없다. 언론은 ‘갑’이고 구단과 선수는 ‘을’이니까. 한 구단 관계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가만히 있어야죠. 싸워서 좋을 게 뭐 있겠습니까.”라고 푸념했다.

선수들이 혐의를 벗고 난 뒤, 실명을 거론한 언론들은 “의혹이 있었고, 조사받은 건 사실이잖아. 혐의가 사실이 아니라니 다행이네.”라고 말할 거다. 그리고 다시 축구는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정말 문제가 없을까.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혐의가 먼저 알려지면 해당 선수들과 관련자들이 살아날 구멍을 찾으려 발버둥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전직 K리거 정종관처럼 비극적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보도 자체가 수사 방해다.

또 혐의가 없는데 이름이 알려진 선수는 죄도 없이 여론의 형벌을 받는다. 결백이 밝혀져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라는 등의 의혹의 잔상은 쉬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여러 문제 때문에 검찰은 언론에 엠바고를 요청했다. 프로축구에서 승부조작을 뿌리뽑기 위해 검찰 수사가 잘 마무리돼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엠바고는 지켜져야 했다. 자신들의 사주 이름이 거론되는 일에는 발끈하면서, 평생 공만 찬 선수들에게는 왜 같은 대접을 해주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쨌든 검찰에 의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뒤 “플레이로 결백을 증명하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 이제 여론도 언론을 능가할 정도로 지혜롭고, 쉽게 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2011-07-06 28면

많이 본 뉴스

‘금융투자소득세’ 당신의 생각은?
금융투자소득세는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의 투자로 5000만원 이상의 이익을 실현했을 때 초과분에 한해 20%의 금투세와 2%의 지방소득세를, 3억원 이상은 초과분의 25% 금투세와 2.5%의 지방소득세를 내는 것이 골자입니다. 내년 시행을 앞두고 제도 도입과 유예,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일정 기간 유예해야 한다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