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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건국 이래 첫 민주적 정권교체

파키스탄, 건국 이래 첫 민주적 정권교체

입력 2013-05-12 00:00
업데이트 2013-05-1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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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당 부패·실정에 이슬람 성향 제1야당 승리유권자, 탈레반 위협에도 투표…군부 중립유지도 영향

파키스탄이 11일 반군 파키스탄탈레반(TTP)의 위협 속에서도 총선을 대체로 무난히 치러내 1947년 건국 이래 최초로 민주적 정권교체를 실현하게 됐다.

이는 TTP 공격위협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장을 찾은데다 파키스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군부가 ‘중립’을 유지한 덕분으로 풀이된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현재 개표작업이 진행중인 가운데 친이슬람 제1야당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N)가 집권 파키스탄인민당(PPP)을 제치고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PML-N의 우세는 PPP 연정이 5년 집권기간 부패혐의에 시달리면서 경제회생, 테러근절 등 공약이행에 실패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 탈레반 공격위협에도 유권자들 투표소 찾아

유세기간 내내 TTP의 공세는 위협적이었다. TTP는 총선 당일에도 곳곳에서 공격을 감행했다. 총선 당일에만 총 43건의 정치테러로 최소 32명이 사망하고 224명이 부상했다. 지난달 중순 이후 총선 전날까지 테러로 120여명이 숨졌다.

탈레반이 민주주의는 이슬람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선거에 참여하면 공격하겠다고 위협해왔음에도 많은 유권자가 굴복하지 않고 투표소를 찾았다. 이 때문에 선관위는 전국 투표소의 투표마감 시각을 오후 5시에서 한 시간 연장하는 이례적 조치를 취했다.

선거당국은 이번 투표율이 최고 60%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2008년 총선때의 투표율은 44%에 그쳤다. 이번 총선 투표율이 전망한 대로 나온다면 1977년 이래 최고치다.

높은 투표율은 집권당 실정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더 이상은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에 투표소를 많이 찾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크리켓 국민스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야당 정치지도자 임란 칸을 ‘대안’으로 본 젊은이와 중산층도 많이 투표한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건국 이래 세차례 쿠데타를 감행했고 건국 이래 지금까지 기간의 절반 이상 통치한 군부가 이번 총선에서 중립을 유지한 것도 민주적 정권교체에 일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군부는 지난 5년간 나름대로 중립을 지켰다. 연정정부가 각종 이견을 조율하지 못해 흔들릴 때마다 정치에 개입해온 관행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이다.

군부가 민주주의를 궤도에서 이탈시키려 한다는 음모론이 이번 총선과정에서도 나돌았다. 그러나 아시파크 카야니 육군 참모총장은 이를 일축하고 스스로 투표장을 찾아 민주주의 지지 입장을 천명했다.

◇ PML-N의 승리는 전임 정부 ‘실정’ 덕분

PML-N은 전임 PPP 연정의 실패 덕을 많이 본 셈이다.

PPP 주도 연정은 2008년 총선 직전 발생한 PPP 총재인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암살에 따른 동정론을 등에 업고 집권에 성공했다.

PPP는 다른 세속주의 정당인 아와미인민당(ANP), 무타히다 카우미 운동(MQM)과 함께 연정을 구성, 경제회생과 테러근절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집권기간 부패혐의로 내내 시달렸다. 특히 부토 전 총리와 남편이자 현 대통령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가 1990년대 업체로부터 받은 뇌물 1천200만 달러를 스위스 은행에서 세탁했다는 혐의가 정권의 발목을 잡았다.

유수프 라자 길라니 전 총리는 이 사건의 수사를 스위스 당국이 재개토록 요청하라는 사법부 명령을 계속 거부해오다가 총리직을 박탈당했다. 길라니의 후임인 페르베즈 아슈라프 전 총리는 자신과 관련된 수뢰혐의로 총선 출마마저 금지당했다.

이런 가운데 공약은 헛돌았다. PPP 연정 집권기간 경제성장률은 4% 미만에 줄곧 머물렀다. 군사쿠데타로 입성한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대통령 정부 때보다 훨씬 못한 성적이었다. 만성적 전력난을 해소하지 못해 경제회생을 도모할 수 없었다.

1999년 시작된 무샤라프 정부의 9년 동안 성장률은 한때 7%에 육박하기도 했다. PPP 연정은 물가도 잡지 못해 한때 상승률이 25%에 달하기도 했다.

TTP 준동도 문제였다. 북서부를 거점으로 한 TTP는 PPP 연정의 거듭된 진압작전에도 ‘내성’만 키웠다. 이 때문에 PPP와 연정 파트너 정당들은 이번 총선과정에서 내내 공격을 받아 유세도 제대로 벌이지 못했다. 대신 친이슬람 정당인 PML-N와 PTI는 비교적 자유롭게 유세를 펼쳤다.

PPP 연정의 실패에 ‘고무된’ 무샤라프는 4년여 망명생활을 접고 지난 3월 귀국, 총선출마까지 노렸다. 그러나 부토 전 총리 암살방조 등의 혐의로 사법당국에 체포돼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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