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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에게만 맡긴’ 허술한 구제역 백신접종 제대로 될리 있나

‘농민에게만 맡긴’ 허술한 구제역 백신접종 제대로 될리 있나

입력 2017-02-07 15:41
업데이트 2017-02-0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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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청 표본 검사도 형식적…총체적 부실 백신접종 ‘대수술’ 필요 정부, 구제역 발생하니 ‘모럴해제드’ 농민 탓으로 돌려

그동안 정부는 구제역 확산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말해왔다. 국내에서 사육되는 모든 소·돼지한테 백신을 맞혀 구멍 날 틈이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 같은 호언장담에도 지난 5일과 6일 충북 보은과 전북 정읍에서 연이어 소 구제역이 터졌다. 발병 농장의 소를 검사했더니 항체 형성률은 20%를 밑돌았다. 정부의 말과 달리 구제역 방역망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던 셈이다.

당황한 정부는 “백신 비용부담 등의 이유로 접종하지 않는 ‘모럴해저드’가 농가에 있었다”고 농민 탓을 했다.

그러나 농가 자율에 맡긴 지금의 접종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백신접종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는 혈청검사를 강화해야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 정부 ‘소 항체 형성률 97%’ 맞나…실제론 19%·5%

정부는 2010년 소·돼지 348만 마리가 살처분되는 최악의 구제역을 겪은 뒤 백신 접종을 의무화했다. 축종별로 다르지만, 소의 경우 생후 2개월에 한 번 접종한 뒤 보름 후 한 차례 더 백신을 놔야 한다. 이후에는 1년에 2차례씩 반복 접종하게 돼 있다.

이를 통해 정부는 지난해 전국의 백신 항체 형성률을 소 97.5%, 돼지 75.7%라고 밝혔다. 이 수치 대로라면 소의 경우 구제역이 발생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러나 구제역이 발생한 보은 젖소농가의 항체 형성률은 19%로 나타났다. 21마리를 검사했는데, 4마리만 항체가 나왔다는 얘기다.

이튿날 구제역이 확진된 정읍의 한우 농가에서도 20마리의 소 가운데 1마리만 항체가 형성돼 있었다. 항체 형성률은 고작 5%로, 백신접종이 제대로 되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정읍 농가의 경우 서류상에는 지난해 8월 26일 마지막 접종을 한 것으로 돼 있지만, 항체 형성률이 5%라면 접종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고 시인했다.

◇ “수의사도 힘든 데”…백신접종 농민에게만 맡겨

지금의 구제역 백신 접종은 약품 구매부터 접종까지 모든 과정이 전적으로 농가에 맡겨져 있다. 소 50마리 이하의 소규모 농가에는 지자체에서 백신을 공급하지만, 그 이상이면 농가 스스로 축협에서 백신을 구해서 접종해야 한다.

문제는 덩치가 큰 소는 베테랑 수의사라도 다루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충북 옥천에서 한우 200마리를 사육하는 유모(67)씨는 “목덜미나 허벅지 근육에다 백신을 주사하는 과정에서 소가 몸을 비틀어 주삿바늘이 빠지거나 부러지기도 한다”며 “몸집 큰 거세한 소는 두 사람 이상 동원돼 주사를 맞혀야 한다”고 말했다.

옥천군청 축산계 오시나(수의사) 씨는 “숙련된 수의사라도 여러 마리의 소를 한꺼번에 접종하다 보면, 주삿바늘이 제대로 꽂히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며 “백신은 근육 속에 제대로 꽂혀야 항체를 형성하는 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

방목하는 경우라면 소를 끌어다가 끈이나 고삐 등으로 붙잡아 매는 작업도 쉬운 일이 아니다.

옥천한우협회 관계자는 “백신 접종이 나이 든 농부한테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어서 외국인 노동자 손을 빌리는 경우가 많다”며 “이 과정에서 부실접종이 생길 개연성이 크다”고 말했다.

◇ “유산·착유량 감소” 농가들 접종 기피

앰플 형태의 백신 한 병(50㎖)이면 소 25마리를 접종할 수 있다. 비용으로 따지면 1마리당 1천700원꼴이다. 정부에서 50%를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규모 큰 기업농 입장에서는 비용부담이 적지 않다.

여기에다가 백신을 맞으면 유산한다거나 몸살을 앓는다는 소문도 나돈다. 젖소의 경우 착유량이 떨어진다고 기피하는 농가도 있다.

장흥한우협회 영농조합법인 관계자는 “연관성이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백신을 맞은 소가 유산한 사례가 있고, 착유량이 줄어드는 것은 여러 농가에서 경험한 일”이라며 “백신 효능이나 부작용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다 보니 농가에서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보관이나 사용과정에서 백신 효능이 떨어질 수도 있다. 통상 냉장(2∼8도)보관 하게 돼 있는 백신은 접종 직전 실온(18도)에 놔뒀다가 써야 하지만, 상당수 농가는 냉장 상태 그대로 접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은축협 관계자는 “백신을 공급할 때 사용방법이나 주의사항을 꼼꼼히 설명하지만, 스스로의 경험에 기대어 들은 체 만체하는 농민이 많다”며 “보관 중 문제가 생기면 다시 공급받아야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 접종시스템 개선·농민 교육 강화 필요

구제역 백신 접종을 하지 않으면 1차 200만원, 2차 400만원, 3차 1천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그러나 이를 확인할 수 있는 혈청검사가 제한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적발되는 경우는 드물다.

충북도는 지난해 소 1천210마리와 돼지 2만4천172마리에 대해 혈청 표본검사를 했다. 이는 도내에서 사육되는 소 23만1천마리의 0.5%, 돼지 62만7천마리의 3.9%에 불과하다.

이종환 전북도 축산과장은 “상당수 농장이 공무원 등 외부인 접근을 꺼리는 상황이어서 현장 관리 대신 축협 등의 백신 공급기록 등에 의존하고 있다”며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가에서 백신을 몰래 쏟아버린 뒤 빈 병을 보여줘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구제역 발생을 억제하려면 이 같은 접종방식부터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보은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 송진우씨는 “농가 단위로 제각각 이뤄지는 백신 접종 대신 일정한 기간을 정해 전국적으로 한꺼번에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구제역이 주로 겨울에 발생한 점에 고려해 10월과 이듬해 4월께 백신을 일괄접종한 뒤 혈청 검사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성구 한경대학교 동물생명환경과학과 교수도 “축산농가에 백신 접종을 전적으로 맡겨서는 제대로 된 방역을 기대하기 힘들다”며 “접종시스템 개선과 함께 농민 교육 등도 강화해 잘 못 알려진 백신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처럼 밀식사육 환경에서는 구제역 등 전염병에 쉽게 노출되고 대응하기도 힘들다”며 “소나 돼지가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항체 형성률이 떨어진다는 점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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