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구멍뚫린 전자발찌…“만능 기대 버려야!”

구멍뚫린 전자발찌…“만능 기대 버려야!”

입력 2012-08-23 00:00
업데이트 2012-08-23 08:11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관리 인력 태부족…전문가 “교화·치유 등 제도적 보완 필요”

위치추적전자장치(일명 전자발찌)를 찬 채로 빈집에 침입, 가정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전자발찌의 효용성에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전자발찌 도입 이후 성폭력 전과자의 동종 재범률이 줄어들었지만, 위치추적기에 불과한 전자발찌만으로는 재범을 막기에 근본적 한계가 노출되고 있다.

위치추적과 함께 보호관찰관의 밀착 지도감독 등 원활한 시스템 운영이 뒷받침돼야 함에도 관찰대상자 수에 비해 담당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전자발찌가 만능’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인력 확충과 법무부-경찰 공조 강화, 발찌 부착자 치유 프로그램 운영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위치추적기에 불과한 전자발찌 = 전자발찌는 2007년 성폭력범의 위치추적과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을 통해 재범을 억제하고자 도입됐다.

법무부는 서울과 대전 두 곳에 관제센터를 운영하는데 각 센터에서 전국을 권역별로 나눠 전자발찌 부착자의 위치를 24시간 추적한다.

부착자가 전자발찌를 훼손하거나 발찌와 휴대용 추적장치의 이격으로 센터 감응범위에서 멀어지면 경보를 발령, 전국 56개 보호관찰소의 전담 관찰관이 조치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부착자별로 정해진 야간 통행금지 시간을 어기거나 어린이집, 학교 등 접근제한 구역을 침범하는 것으로 감지되는 경우에도 경보가 내려진다.

문제는 전자발찌를 통해서는 관찰 대상자의 위치정보만 파악할 수 있다는 점.

성폭행 전과로 전자발찌를 찬 40대 남성이 지난 20일 이웃 동네 가정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사건은 전자발찌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피의자는 자신의 집에서 불과 1km 떨어진 피해자의 집에서 범행을 저질렀으나 사건이 벌어지던 당시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

피의자가 이웃 동네 골목길을 활보하다가 자녀를 유치원 통학차량 타는 곳까지 데려다 주느라 현관문을 잠그지 않은 피해자의 집에 유유히 들어갔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적이다.

전자발찌 부착자가 자신의 주거지에 있더라도 전자발찌로는 ‘3차원적 위치 파악’이 어려워 범행이 발생했을 때 경보가 울리지 않는 한계도 있다.

예를 들어 아파트 5층에 사는 전자발찌 부착자가 어린이를 아파트 옥상이나 지하로 유인해 범행을 저질러도 관제센터에는 부착자가 자기 아파트에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

◇보호관리 인력 태부족 = 정부는 최근 무선인터넷(Wifi) 기능을 장착한 ‘제5세대 전자발찌’ 개발을 보완책으로 내놓았으나 한계는 해소되지 않는다.

GPS 신호가 닿지 않는 지하 등에 진입할 대 측정위치 값의 신뢰도를 높이고자 와이파이 기능을 추가하더라도 여전히 위치추적만 가능하기 때문.

결국, 기술적 한계를 보완할 운영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전자발찌 관련 담당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우선 서울과 대전, 두 곳의 관제센터에서 관찰대상자를 24시간 감시한다고 하나 관제센터 근무 인원은 3명씩, 6명에 불과하다.

1천26명의 전자발찌 부착자를 반분해 각 관제센터에서 513명씩 감시한다고 해도 1명(교대근무 감안)이 실시간으로 500명 넘는 대상자를 지켜본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또 현 수준에서 전자발찌 부착자 감독에 필요한 전담 인원은 456명이지만, 보호 관찰 인력은 102명에 불과해 산술적으로 363명을 늘려야 하는 게 현실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선진국은 보호관찰 직원 1명당 약 40명의 범죄자를 담당하는데 우리나라는 직원 1명당 142명을 맡게 돼 있다”며 “선진국 수준의 집중 보호관찰을 위해서는 대규모로 인력을 충원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내달부터 성폭력 범죄자가 전자발찌 훼손 이외의 준수사항을 위반할 때도 경찰과 공동 출동하기로 해 인력 문제에 숨통이 트이긴 하겠으나 문제점이 완전히 해소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공동 출동이 모든 전자발찌 부착자가 아니라 평소 관찰을 통해 위반 가능성이 커 ‘블랙리스트’에 오른 부착자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전자발찌가 만능이라는 생각 버려야!” = 전문가들은 우선 전자발찌가 만능이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기계적으로 한계가 있는 만큼 제도 보완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전자발찌 도입 배경은 재범 방지가 아니라 사람이 못하는 성범죄자 감시를 전자장치로 대신한다는 것에 있다”며 “전자발찌가 위치정보만 알려주고 부착자가 실제로 어떤 행위를 하는지 감시가 안 되는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만큼 기계에만 의존할 게 법무부가 경찰과 업무를 공조해 관리 감독을 강화하든지 성범죄 치료나 극단적으로는 화학적 거세 등 보완하는 방안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웅혁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도 “관리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전자발찌에만 편협하게 의존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전자발찌를 채웠기 때문에 부착자가 심리적 압박을 느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낭만적 기대도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보호관찰관이 일상생활에서 부착자와 밀접한 관계를 통해 재범 우려가 있으면 교화하고 심리치료도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부착자에게 ‘놀이터에 접근하지 말 것’ 등 일정한 조건을 주고 이의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데 거짓말 탐지기를 활용하는 등 재범 가능성 가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연합뉴스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선택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현재의 보험료율(9%), 소득대체율(40%)을 개선하는 2가지 안을 냈는데요. 당신의 생각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로 각각 인상(소득보장안)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40%로 유지(재정안정안)
광고삭제
위로